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침묵의 세계

창고지기들 2014. 12. 12. 15:45

 

 

 

 

막스 피카르트의 책, 「침묵의 세계」를 읽고.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용이한 독서를 위해 책의 새까만 커버를 벗겨내자

샛노란 겉표지가 불쑥 튀어나왔던 것이었다.

색깔 간의 낙차가 기분을 살짝 상기시켰다.

그러나 책을 열었을 때,

입구부터 자욱하게 진주해 있던 연기 탓에

감정은 홍조를 띠다 말았다.

읽어갈수록 그 옛날 머리를 쥐어짜며 읽었던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의 탄내를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었다.

독서의 여정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예상은

차라리 기정사실이었다.

 


나를 길러낸 세계는 소음의 세계다.

온갖 잡음어를 먹고 성장한 나는

소음의 대량생산품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이런 내게 소음의 대척점이자,

나를 시원(始原)의 나답게 하는 침묵의 세계가

낯설고, 아리송하고, 불편한 것은 당연했다.

가상현실에서 깨어나 참 현실의 세계 속에서 어리둥절하던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레오가 떠올랐다.

다행인 것은 레오를 이끌어주던 트리니티처럼

저자가 침묵의 세계의 안내자가 되어주었다는 점이다.

그의 인도로 침묵의 세계는 조금씩 익숙해져 갔고,

친숙해져 갈 무렵에는 뜻밖의 선물을 받기도 했다.

 


또한 침묵하는 실체는

한 인간의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이 변화의 원인은 정신이겠지만,

침묵이 없다면 변화는 실현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변화할 때

인간이 자신의 모든 과거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가 지나간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

침묵을 놓을 수 있을 때뿐이기 때문이다.

침묵이 결여된 오늘날의 인간은 더 이상 변신할 수가 없다.

다만 발전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발전이 오늘날 그렇게 중요시되는 것이다.

발전은 침묵이 아니라 우왕좌왕하는 논란 속에서 생긴다.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발전이 아니라 변화다.

그러나 발전하는 그리스도인은 넘쳐나도

변화하는 그리스도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세상의 소음에 함몰되어 교회들이 침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움과 지나간 이전 것 사이에

침묵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선에선 침묵의 기도, 성경 묵상,

관상, 영적 책읽기 등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다양한 프로그램이라는 소음에 밀려

뒷방 늙은이 신세일 뿐이다. 휴.

 


인간의 행동거지는 더 이상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지 않고

잡음어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

인간은 이제 말과 더불어, 말에 의해서 살지 않는다.

말은 더 이상 인간이 진리를 위한,

혹은 사랑을 위한 결단을 내리는 장소가 아니다.

잡음어에 의해서 인간을 위한 결단이 내려진다.

잡음어가 주된 것이며,

인간은 다만 잡음어가 펼쳐지는 장소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은 잡음어를 위한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 하나 내 말, 내 견해, 내 취향이었던 것이 있었던가?

외부로부터 주입된 숱한 잡음어를

마치 내 것인 양 착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잡음어의 숙주가 어디 나뿐일까?

내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잡음어를 위해 존재하는

잡음어 기계들이 아니었던가? 하.

 


인간은 자신이 이제는 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당연히 진정으로 슬퍼해야 되겠지만,

이전에 말이 있었던 그의 내적 공간을

잡음어가 가득 채워놓은 까닭에

자신에게서 말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의 내부에서는 그 사실이 인식되며,

단지 그가 그것을 모를 뿐이다.

그 때문에 인간은 불안해지며 신경질적이 된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내 말들은 잡음어 속에서 질식했던 것일까?

나이가 들수록 더 신경질적이 되는 이유는

말을, 침묵을 잃어버려서 인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 등 발 빠른 매체들을 통해서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새로운 엄청난 양의 잡음어들이 내던져지고 있다.

그 더미 속에서 영혼은 곤혹스러워하나,

그것을 감지하기에 인식은 정신없고 둔감하다. 쯧.

 


오늘날 인간에게 잠이 없는 것은 인간에게 침묵이 없기 때문이다.

잠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침묵과 함께

보편적인 거대한 침묵 속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간에게는

잠의 보편적인 거대한 침묵에게로 데려다줄

자기 내부의 침묵이 결여되어 있었다.

오늘날 잠이란 소음에 의한 피로 현상이며,

소음에 대한 반작용일 뿐이다.

잠은 이제 결코 독자적인 세계가 아니다.


=한 번은 아침 눈을 떴을 때,

어딘가로 부터 배달된 낯선 보따리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눈을 비비면서 보자기를 열어보았더니

갇혀있던 말들이 숨을 내뱉듯이 읊조리기 시작했다.


“뭐라도 된 듯이 잔뜩 힘이 들어갔구나.

힘을 빼고 쉽게 써라.”


“어린 시절의 소박함을 기억해라.

그러면 삶이 오롯이 즐거워질 게다.”


요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때 나는 침묵에 깊이 젖은 잠을 잤던 것이다. 흠.

 


기도 속에서 말은 저절로 침묵 속으로 되돌아간다.

기도란 애초부터 침묵의 영역 안에 있었다.

기도는 인간으로부터 떨어져나가 신에게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침묵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 안에서 사라진다.

기도는 그치지 않고 존재할 수 있지만,

기도의 말은 항시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기도는 말들을 침묵 속으로 쏟아 붓는다.


=요즘 나는 예레미야가 빠졌던

‘심히 깊은 구덩이’를 자주 생각한다.(예레미야애가 4:55)

그 곳에서 그는 주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심히 깊은 구덩이는 침묵이 설계한 곳이다.

그곳에서 그는 주께 기도했고, 주는 그에게 응답하셨다.

그러니까 기도와 응답의 교집합은 침묵이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심히 깊은 구덩이에 빠지기 싫어서,

침묵이 두려워서 기도마저도 소음으로 덮을 때가 있었다.

부끄럽다.

 


신의 침묵은 사랑을 통해서 말씀으로 변한다.

신의 말씀은 스스로를 바치는 침묵,

인간에게 스스로를 바치는 침묵이다.


=성경 묵상은 내게 바친 그 분의 침묵에 푹 잠기는 일이다.

잡음어의 오물을 말끔히 빤 뒤,

해사한 웃음을 영혼에 입히는 일이다. 흐음.

 


“세계의 현상태, 생활 전체가 병들어 있다.

만일 내가 의사이고

그래서 당신이 무슨 충고를 해주겠느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침묵을 창조하라!

인간을 침묵에게로 데려가라.

이렇게는 신의 말씀이 들릴 수 없다.

그리고 소음 속에서도 드릴 수 있도록

소란스런 방법을 사용하여 신의 말씀을 떠들썩하게 외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신의 말씀이 아니다.

그러므로 침묵을 창조하라!”

(키에르케고르)


=뉘라서 침묵을 창조할 수 있을까?

내 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잡음어를 생산하는 말하는 기계들과 거리두기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심히 깊은 구덩이에 기어들어가

창조주께 침묵을 창조해달라고 기도하는 정도일 것이다.

침묵의 창조주여!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침묵을 담아내려고 특별히 제작된 저자의 언어는

맑고, 아름답고, 고요하면서도 신비롭고, 날카로우며, 신화적이다.

그래서 번역자가 꽤 애를 먹었을 것으로 보인다.

허나, 최승자 시인의 번역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사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 시인이라서 더 믿음직스러웠다.

 


읽는 내내 나는 자주 졸았다.

침묵의 세계가

내게 실재하는 가장 확실한 침묵인 잠을

불러냈기 때문일 것이다.(누가 뭐래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ㅋ)

침묵에 대한 책을 마치면서도

나는 여전히 실체적 침묵이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그리고 침묵을 모른다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다.

누구도 침묵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고,

대양 같은 침묵을

말로 엮어낸 간장 종지만한 인식의 양식에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니 말이다.

나는 다만 그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그것을 잘 모른다고 해서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가까이하고,

그것에 잠기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기억하기로 하자.

 


무엇보다도 우리는 아껴야 한다.

순수한 법칙 속에서

신성하게 세워진 황무지를.

(횔덜린)

 

 


#Dec. 11. 2014.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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