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 715

로드 짐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을 읽고. 그런 두려움 때문에 내가 짐을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어. 내가 어떻게 알겠어? 심지어 스타인마저 짐이 낭만적이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는 걸. 나는 그저 짐이 우리 중 한 명이란 사실만 알 뿐이었어. 그리고 짐이 낭만적이어서 뭘? 그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기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나 자신의 본능적 느낌과 혼란스러운 생각만 이렇게 잔뜩 늘어놓는 거야. 나에게 짐은 그냥 존재했고, 너희에겐 결국 나를 통해서만 짐이 존재하지. -본서 중에서 주인공 짐을 계시하는 말로 씨에 의하면 주인공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짐이 우리 중 한 명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낭만적이라는 것이다. 우리 중의 한 명인 낭만적인 사람, 그가 바로 로드 짐이다. 이 때, 우리란 스스..

포도원 농부의 당부

포도원 농부의 당부 귀하가 리모델링한 포도원,산울타리를 다시 두르고 즙 짜는 틀과 망대를 새로 만든저는 귀하가 새로 지은 포도원의 농부입니다. 오래 전 그 포도원은배은망덕이 장기인 자들의 손아귀에 있었다지요.포도원 소출 중 얼마를 받으려고귀하가 보낸 종들을 잡아심히 때려 상처 입히고 능욕하는 것도 모자라급기야 귀하가 보낸 상속자까지잡아 죽인 뒤 포도원을 가로채려 했다는.지금이야 한바탕 쫓겨난 그들이고,유린당한 포도원에는 새로운 단장과 함께 신입 소작농이 배치되어이제나 저제나 포도원 소출 중 얼마라도 맛보기를 기다리는 귀하가 있지요. 하지만 이를 어째요?새 포도원이 맺은 것은기대할만 한 극상품 포도가 아니라고작 들 포도뿐이니.이게 다 귀하의 포도원을 강탈하려는 옛 농부들이 죽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서..

대면 비대면 외면

김찬호의 책, 을 읽고.  어쩌다 보니 은둔 중이다. 이에 대해 '자발적 칩거'라고 명명하고 싶지만, 역시나 '자연적 칩거'가 맞다. 개인적 기질과 성향, 그리고 삶의 여건이 빗어낸 지속적인 삶의 태도가 몰고 온 결과인 것이다. 비대면이 일상이 된 자에게 대면은 노스탤지어요, 외면은 손쉬운 다음 수순이다.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테다. 문득 을 손에 쥐게 된 것은. 이 책은 전 세계를 강제로 비대면 국면으로 몰아붙였던 코로나 이후의 사회적 변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비대면’을 지나 ‘외면’에 도착한 작가는 이야기의 방향을 사람의 마음으로 돌린 후, 마음의 회복을 위한 대면의 길을 모색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유익했던 점은 최신 사회학적 용어들을 배울..

회막의 수다쟁이

회막의 수다쟁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리더들이 꼬박 십이 일에 걸쳐 차례대로 봉헌 예물을 드렸다. 그 후, 하나님은 그들의 봉헌 예물을 품목별로 모아 더하셨다. 은 쟁반과 은 대접에서부터 번제물과 화목제물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꼼꼼한 결산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발견된다. 단 한 개도 허투루 취급하지 않으시겠다는 알뜰한 마음이. 열 두 리더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드린 봉헌 예물을 보셨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감격으로 벅차올랐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리더들 각자가 전심과 전력을 다해 드린 헌신이 전체로 가시화되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벅차다 못해 터질 지경이 되었던 듯하다. 봉헌 예식을 마친 후, 보고하기 위해 회막에 들어온 모세를 붙잡고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모세..

1984

조지 오웰의 소설, 를 읽고.  여러 층위로 색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예리한 통찰력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전체주의를 극단까지 끌어올려 그것을 형상화한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종교적 우화로 읽혔다. 뭐 눈에는 정말로 뭐만 보이는 것이다. 내게 는 윈스턴 스미스의 회심기로 읽혔다. 성부인 빅 브라더와 성자인 오브라이언, 그리고 성령인 당의 시스템을 통해 오세아니아(가상의 나라) 당국은 의심하여 탈선한 윈스턴 씨를 사로잡아 폭력을 통해 강제로 당의 세계관으로 개조시킨 뒤, 당의 선전과 선동을 믿고 자발적으로 순종하도록 자유의지를 거듭나게 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회심의 정점, 곧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사살(증발)해 버린다.  윈스턴 씨의 회심기는 ..

와서 조반을 먹으라

와서 조반을 먹으라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요한복음 21:9-10)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맛있는 것은 아침이다. 밤에 잠 들면서 피식 웃는 이유도 다음날 먹을 아침밥 때문이다. 조반을 먹기 위해서 잠자리에 든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요즈음 매일 먹고 있는 나의 조반 메뉴는 삶은 달걀 한개, 사과 두 쪽, 블루베리를 올린 그릭 요거트, 사과 2쪽 , 크림치즈를 바른 베이글 반쪽, 그리고 드립 커피 한잔. 장시간 공복 상태였던 몸에 아침 끼니가 들어가면 해가 뜨듯 열이 오른다. 그 열기로 하루도 살아지겠구나 한다.  전직 어부였던 제자들이 물고기나 잡으러 가겠다며 배로 몰려간다. 너무 오랜만에 그물을 잡은 탓인지..

공감 연습

레슬리 제이미슨의 책, 을 읽고.  덤블도어가 말했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능력이 아니라 선택을 통해 나타나는 거라고. 그런 점에서 이 책 은 작가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선.택.한 글감에는 고통이 담기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 같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불안한 긴장감을 일으키는 책의 소재들은 다음과 같다. ‘환자를 연기하는 의료 배우, 낙태와 심장 수술, 모겔론스 병 환자들, 국경선의 폭력적인 정경, 강도상해를 당한 관광객, 고통 투어, 극한의 ‘바클리 마라톤’, 재소자와의 인터뷰, 세 명의 소년을 살해했다고 지목되어 투옥된 세 명의 소년들, 여성 고통 일반에 대한 편견과 폄하.’ 그렇다고 작가의 글쓰기 능력이 그럭저럭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녀는 굉장한 글쓰기 능력..

안티-소탐대실(Anti-小貪大失)

안티-소탐대실(Anti-小貪大失)   소유냐? 존재냐?, 그것이 문제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청춘의 시절은 햇살 아래 안개처럼 사라진 지 오래다. 그 후로 세상은 소유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로 치달아 오늘에 이르렀다. 내가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존재에 몰입해 있는 동안. ‘소유도 중요해!’에서 ‘소유만이 전부야!’로 진화한 사회의 관심은 온통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잃을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나, 영악한 사회는 그것을 교묘하게 은폐한다. 덕분에 소유의 사람들, 곧 자신이 소유한 것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자들은 치명적인 소탐대실(小貪大失)을 경험하곤 한다. ‘치명적인’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것은 그로 인하여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하는 까닭이다..

Let us leave

Let us leave   두 달 쯤 전이었다. 이미 사역자를 구했다는 전언 앞에서 한번 지원해볼까 하던 생각을 구겨버렸던 것은. 그러다 최근에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지원해보고 싶은 열정이야 식어버린 지 오래였으나, 그렇다고 지원하려던 의지까지 바닥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에 당도한 말씀은 보혜사와 평안에 대한 주님의 약속이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6-27)  약속과 더불어 주님의 음성, 곧 “일어나라 여..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

강이랑의 책, 를 읽고.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덕분에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나, 유치원 교사로 일해본 적은 없다. 대신에 동화를 집필했었다. 그림책 두 권과 장편 동화 두 편. 출생하지 못한 태아처럼 십 수년째 자궁 같은 컴퓨터 문서 폴더에 들어있는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무력감에 젖어든다. 이 책의 저자는 어린이 문학 연구가이자, 번역가인 동시에 동화 작가다. 그녀의 비범한 점은 동심을 가진 성숙한 어른이라는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동심이란 단순히 아이의 마음일 뿐 아니라 나와 다른 존재를 귀하게 대하고, 우열을 가리지 않는 마음인 동시에, 함께할 수 있음을 기뻐하는 마음이다. 유유상종이라고, 그녀는 같은 동심을 가진 이들과 함께 어린이 문학을 함께 연구하면서 동심을 유지 발전시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