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 농부의 당부
귀하가 리모델링한 포도원,
산울타리를 다시 두르고
즙 짜는 틀과 망대를 새로 만든
저는 귀하가 새로 지은 포도원의 농부입니다.
오래 전 그 포도원은
배은망덕이 장기인 자들의 손아귀에 있었다지요.
포도원 소출 중 얼마를 받으려고
귀하가 보낸 종들을 잡아
심히 때려 상처 입히고 능욕하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귀하가 보낸 상속자까지
잡아 죽인 뒤 포도원을 가로채려 했다는.
지금이야 한바탕 쫓겨난 그들이고,
유린당한 포도원에는
새로운 단장과 함께
신입 소작농이 배치되어
이제나 저제나 포도원 소출 중
얼마라도 맛보기를 기다리는
귀하가 있지요.
하지만 이를 어째요?
새 포도원이 맺은 것은
기대할만 한 극상품 포도가 아니라
고작 들 포도뿐이니.
이게 다 귀하의 포도원을 강탈하려는
옛 농부들이 죽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서
새 농부들과 지겹게 반목하는 탓입니다.
그럼에도
끊길 리 없는 소망의 귀하입니다.
들 포도뿐일지라도
그것을 기꺼이 바치는 이가
겸손한 새 농부니까요.
부끄럽고 면목이 없을지라도
맺힌 것 그대로 바치는 성실한 정직함으로
극악한 옛 농부들은
쇠약해지다 못해 진멸될 것이고
포도원은 마침내 극상품 포도로
주인을 기쁘게 만들 터이니.
그 때까지
견뎌주시겠습니까?
인내와 긍휼의 왕,
저를 고용해주신 포도원 주인이시여.
#Apr. 19. 2025. 사진 & 시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