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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관하여

메릴린 로빈슨의 책, 를 읽고. 처음 메릴린 로빈슨을 알게 된 것은 의 저자 데이비드 깁슨 덕분이었다. 어느 때고 꼭 읽어보라는 믿음직스러운 그의 말을 따라 과 를 읽었다. 솔직히 그녀의 소설은 썩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예 맞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어서 탐구 차원에서 소설 과 와 함께 에세이 책인 를 구입해 놓았다. 는 심심풀이로 읽기에는 내용이나 분량(469p)이 만만치 않았다. 그것이 이 책을 한동안 데면데면하게 대했던 이유다. 하지만 결국 때는 차버렸고, 완독할 의도 없이 첫 장 ‘인문주의’를 읽은 것이 화근(?!)이 되어 별 수 없이 다 읽고 말았다. 요 사이 읽은 책들 중에서 단연 발군이었다. 개인적으로 내게는 그녀의 소설보다 그녀의 에세이가 압도적으로 좋았다. 나는 서사보다 먼..

연약하나 위대한

연약하나 위대한 “저희는 아직 자가(自家) 주택이 없어요!” 은행 업무를 도와주던 그녀의 눈빛이 변한 것은 그 때였다. 변한 눈빛에 어려 있던 것은 그 나이 먹도록 뭐했느냐는 비난 보다는 대체 어쩌다가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봐도 우리는 성실하고 소박한 사람들로 보이기 때문(근자감일지도 모르겠지만!ㅋ)이다. 그 후로 그녀는 더욱 성심껏 우리를 도와주었다. 코로나를 계기로 귀국했을 무렵 고국에는 부동산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것이 광풍인 까닭은 여느 바람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거센 바람이라도 어느 정도 불고나면 그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데, 그것은 도무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막강한 그 바람 앞에서 우리 같은 민초(‘민트 초콜릿’이 아니라 ‘民草’)들은 김..

내가 만든 신

팀 켈러의 책, 을 읽고. 뜨거운 열기가 수북수북 내리던 어느 날, 담양의 한 독립서점에서 만난 책이다. 저자 팀 켈러는 도시 목회자들의 추구미이자 워너비 목회자다. 오랫동안 변방의 선교사로 성경 묵상에 집중하면서 살아온 내게 그가 낯선 것은 자연스럽다. 코로나를 이유로 반강제적으로 귀국을 당한 후, 도심의 교회를 다니고 나서야 그를 접할 수 있었다. 처음에 그는 책을 구입해서 읽을 정도로 매력적여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꾸준함에는 장사가 없지 않은가? 짝사랑에 가까운 도시 목회자의 거듭되는 고백(?!) 덕분에 나는 결국 그의 책 을 읽었고, 그것이 나쁘지 않았던 까닭에 까지 정가에 구매하여 읽게 되었다. 책의 기본 전제는 이렇다. 문화는 저마다 그 문화를 지배하는 대표 우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야구장과 꽃다발

#1. 야구장 첫 경험에는 으레 긴장감과 설렘과 불안감이 뒤엉키기 마련이다.나이 오십이 훌쩍 넘어서 해본 야구 첫 직관에는그것에 귀찮음이 더해져 있었다.^^;;스포츠를 좋아하는 아들의 열심으로 별 수 없이 수원 야구 경기장을 방문한 나는엉겹결에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게 되었다.ㅋ~ 대규모 스포츠 성전에 모인 사람들은정해진 수순을 따라서 다같이 응원을 하면서도각자의 취향에 따라 음식이나 음료, 그리고 경기를 자유롭게 즐겼다.나는 그들과 함께 앉고, 서고, 고함치고, 노래하면서한팀을 응원하는 느슨한 연대의 즐거움을 누렸다.그럼에도 우리가 응원하는 팀은 역전패를 당했다.하지만 언짢을망정 아예 실망하는 사람은 없었다.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로 미국에서 야구 관람을 했던 아들은한국 야구가 훨씬 더..

이별 없는 세대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책, 를 읽고. #1. 안식할 수 없는 곳, 피난처가 될 수 없는 곳이 집 일리 없다. 그런 점에서 국가 폭력의 희생자에게는 집이 없다. 가해자의 땅에 그가 나고 자란 집이 있는 까닭이다. 일찍 집을 떠난 작가에게 영원한 안식이 있기를! #2. 독서하는 동안, 갱년기가 사춘기와 엇비슷해 보이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당해야 하고, 별 수 없이 지나가야만 하는 것이니까. 사춘기 시절의 나는 죽음, 소멸, 파멸에 대해서 분노했었다. 이제 갱년기를 지나는 자에게 그것은 더 이상 분노의 대상이 아니다. 받아들임의 대상이 되었다. 다만, 체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소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선택이 남았을 뿐. 사춘기가 지나갔듯이 갱년기도 지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쩔쩔매는 까닭..

7월의 시편

▶7월의 시편◀ 시편 95편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모든 신들보다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신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바다도 그의 것이라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오라우리가 굽혀 경배하며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그때에 너희 조상들이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

나의 자기 충족적 순간

나의 자기 충족적 순간 스쳐지나가면서 그가 말했다. 인생에는 자기 충족적인 순간이 있다고. 그 순간은 마치 씨앗과 같아서 이후의 시간은 그 순간의 의미를 증폭시키고, 지속되는 현재는 그 순간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된다나?! 그의 말은 여름날의 소나기 같았다. 흙먼지 가득한 일상에 찾아온 소나기를 우산 없이 흠뻑 곱씹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게 그런 순간은 언제였던가? 불현 듯 십 사년 전 케냐 선교사 파송식이 떠올랐다. 돌이켜 보니, 그 때의 나는 우주 발사체를 탑재한 위성이었다. 교회는 나를 우주와 같은 케냐로 쏘아 올렸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녀와 소통하면서 그녀 주위를 맴도는 중이다. 우리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녀는 내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있고, 나는 그녀를 위한 미션을 수행하고 있..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서동욱의 책, 를 읽고. “요즘 뭐 읽어?”“, 아~ 아니다, 읽어.” 지리학과 환경 과학을 전공하는 아들을 둔 까닭이었을까? 책 제목을 기억하는 데에 한동안 애를 먹었다. 내게는 지리와 환경에 따른 날씨가 철학을 바꾸는 것이 타당해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철학자란 보통 사람과는 달리 철학이 날씨를 바꾼다고 굳게 믿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철학자이도 한 저자가 철학을 통해 바꾸려는 날씨는 물리적인 날씨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복잡한 사람의 마음 속 날씨를 의미한다. 저자는 지·정·의로 구성된 마음에서 지적인 부분에 계몽 내지 각성을 제공함으로써 마음의 날씨에 변화를 시도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내게 이 책은 인문학적 설교집으로 읽혔다. 흔히, 설교는 설교자가 성경 본문을 가지고 믿음의 공동체를..

이사야의 반차를 따르는 이를 위한 간구

이사야의 반차를 따르는 이를 위한 간구 굳이 분류하자면, 그녀는 요나가 아니라 이사야의 반차를 따르고 있었다. 하필 이사야의 반차라니, 인간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선두주자인 이사야가 누구인가! 명실상부 위대한 선지자이나, 역경과 고난으로 점철된 사역을 한 이가 아니던가! 그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는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라고 자원한 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강퍅한 백성을 섬기다가 번아웃(burnout)을 경험한 자였다. 그에 반해 요나의 사역은 얼마나 효율적이었던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 다시스로 도망하다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한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를 읽고.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본서 중에서 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슬럼프에 빠진 상태였다. 난봉꾼 로제와의 오랜 관계 속에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로제가 원하는 여자로 살게 된 까닭이었다. 그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