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랑의 책,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를 읽고.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덕분에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나, 유치원 교사로 일해본 적은 없다. 대신에 동화를 집필했었다. 그림책 두 권과 장편 동화 두 편. 출생하지 못한 태아처럼 십 수년째 자궁 같은 컴퓨터 문서 폴더에 들어있는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무력감에 젖어든다.
이 책의 저자는 어린이 문학 연구가이자, 번역가인 동시에 동화 작가다. 그녀의 비범한 점은 동심을 가진 성숙한 어른이라는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동심이란 단순히 아이의 마음일 뿐 아니라 나와 다른 존재를 귀하게 대하고, 우열을 가리지 않는 마음인 동시에, 함께할 수 있음을 기뻐하는 마음이다. 유유상종이라고, 그녀는 같은 동심을 가진 이들과 함께 어린이 문학을 함께 연구하면서 동심을 유지 발전시키는 중이다.
또한 그녀는 성숙한 어른이다. 자신에게 상처 준 존재를 이해할 줄 알고,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앙심을 품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동심을 가진 성숙한 어른으로써 그녀는 자기답게 사는 일에 용기가 있다. 하고 싶은 일, 곧 어린이 문학의, 어린이 문학에 의한, 어린이 문학을 위한 일을 계속하기 위해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공황 장애를 앓기도 했지만, 동심을 가진 성숙한 어른답게 그녀는 그것이 기어이 지나간 뒤에 어린아이처럼 해사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살만해졌다고, 여전히 가난하지만 여전히 살아있고, 그걸로 족하다고.
조리퐁 만한 무게에 평양냉면 같이 슴슴한 맛으로 읽는 내내 무작정 편안한 책이었다. 덤으로 저자로부터 좋은 동화 몇 편을 소개받을 수 있었는데, 독서 레퍼토리의 다양성이 가져올 재미의 확장성에 대한 기대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ㅎ~
며칠 뒤 다시 들판을 찾았을 땐, 베어진 풀 사이로 새 풀이 자라고 있었다. 실망하고 의기소침했던 건 나뿐. 그 사이 풀들은 생명력을 뽐내며 묵묵히 그 자리에 다시 자라고 있었다. 뽑아도 다시 나고, 베어도 다시 자란다. 삶에 죽음이 있는 것처럼, 죽음에서도 삶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본서 중에서
#Feb. 22. 2025.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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