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커 캘트너의 책, 을 읽고.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경이의 순간은 어떻게 내 삶을 일으키고 지탱해주는가” -책의 부제 부주의한 오산이었다. 캘트너 씨의 경외심은 ‘그 경외심’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경외심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가지고 있던 탓에, 을 읽는 일은 처음부터 순탄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게다가 나의 경외심은 원점 타격용이나, 캘트너 씨의 경외심은 융단폭격용이었다. 독서하는 내내 너의 경외심이란 기껏해야 내가 말하는 경외심의 사소한 일부분일 뿐이라는 캘트너 씨의 코웃음이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내게 캘트너 씨의 경외심은 널리 팔아먹기 위해 대중화시킨 보급형 경외심으로 보였다. 그리고 마치 일군의 과학자들이 산업화를 위해 자연을 훼손시켰듯이, 심리 과학자인 그가 상업화를 위해 거룩한(구별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