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 716

경외심

대커 캘트너의 책, 을 읽고.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경이의 순간은 어떻게 내 삶을 일으키고 지탱해주는가” -책의 부제  부주의한 오산이었다. 캘트너 씨의 경외심은 ‘그 경외심’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경외심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가지고 있던 탓에, 을 읽는 일은 처음부터 순탄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게다가 나의 경외심은 원점 타격용이나, 캘트너 씨의 경외심은 융단폭격용이었다. 독서하는 내내 너의 경외심이란 기껏해야 내가 말하는 경외심의 사소한 일부분일 뿐이라는 캘트너 씨의 코웃음이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내게 캘트너 씨의 경외심은 널리 팔아먹기 위해 대중화시킨 보급형 경외심으로 보였다. 그리고 마치 일군의 과학자들이 산업화를 위해 자연을 훼손시켰듯이, 심리 과학자인 그가 상업화를 위해 거룩한(구별성) ..

대림절 시편

기다림의 시편   여호와여내가 깊은 곳에서주께 부르짖었나이다주여내 소리를 들으시며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주게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주여 누가 서리이까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파수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시편 130편, 전문   +++++++++++++++++++++++++++++++++++++++++++++++++++++++++++++++++++++++++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

나의 최애 사도 요한

나의 최애 사도 요한  며칠 전, 백여 만의 폭설로 남편이 귀가하지 못했다. 덕분에 꼬박 이틀을 벙어리로 지내야 했다. 누구와도 말 섞을 기회가 없던 까닭이었다. 자연스레 갇힌 기분이 들었다. 무서운 속도로 쌓여가는 눈처럼 급격히 살찐 우울감이 마음의 잔가지들을 무참히 꺾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떨어진 곳은 사도 요한의 밧모 섬. 그 곳에서 나는 그의 소매를 꼭 붙든 채 그를 따라다니는 중이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으므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요한계시록 1:9) 신약 성경 속 나의 최애 캐릭터 사도 요한.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한 일로 밧모라 하는 섬에 갇혔다. 예수의 환..

셀프(Self)에게 회개를!

셀프(Self)에게 회개를!  나는 교회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고,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은 주님의 신부다. 성부께서 주신 믿음으로 성자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받은 까닭이다. 그런데 신묘막측(神妙莫測)한 셀프(Self)의 스펙트럼은 무궁하다. 성령이 운행하시는 나의 셀프 안에는 의식과 무식이 공존한다. 무의식의 바다 속에는 자연스레 잊힌 온갖 아름다운 빛들과 함께 기억하고 싶지 않은 혹은 기억할 수 없는 리워야단 같은 무시무시한 어둠이 공존한다. 의식의 대지 위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에고(Ego)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패권 다툼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셀프는 버가모 교회다. 버가모 교회에는 순교자도 있고,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도 있었다.(요한계시록 2:13-14) 그..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는 백발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는 백발   “그러면, 기타 사줘!” 어김없이 다가온 생일. 가족들의 부담(?!)을 줄여줄 요량으로 나는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을 냉큼 말했다. 그렇게 나의 아름다운 선물은 생일 다음날 도착했다. 재빨리 튜닝을 한 후, 나는 녀석과 함께 시편 8편을 노랬다. 생김새만큼이나 귓가를 간지럽히는 촬랑대는 소리가 예뻤다. 그래서 였을까? 기타를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주인을 만나 타고난 역량대로 소리를 내지 못해 녀석이 맘고생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자격지심이 들기도 했다.   어느새(!) 훌쩍 넘어버린 반백 살. 시인의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의 고백이 되어버리는 것은 그 때문일 테다.  “하나님이여!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내가 지금까지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였나이다하나님이여!내가 늙..

고통의 문제

C. S. 루이스의 책, 를 읽고.  생즉고(生卽苦), 곧 삶은 고통일 뿐이라는 명제는 불교의 모퉁이돌이다. 이는 세상을 두루 살피고, 꿰뚫어 통찰한 후에 내린 석가모니의 지혜이다. 그에 따르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인 고통이라는 첫 단추를 채우지 않는다면, 인간은 마지막 단추인 해탈을 채울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열반을 입을 수 없다.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그리스도인. 그러나 희노애락을 느끼면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그들의 환경 역시 고통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루이스 씨는 고통에 관해 한 술을 더 떠, 그리스도인은 고통을 근면히 생산해 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고통의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

뒤풀이 노래

뒤풀이 노래   당일 배송된 시(詩) 한 편포장을 뜯어 읊조리니울컥 눈물 짓는 내 영혼하나님께 무사히 피함이여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나의 구원이시오나의 요새이시니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편 62:2)  높은 단에 선 자를 끌어내리려고일제히 흔들며 공격하는 자들아겸손을 가장하고책임을 과장하며감정을 조장하면서거짓을 언제까지 즐기려느냐  사역의 승패는입김 같은 느낌이 아닌육중한 그분의 영광에 달렸나니매복으로 허를 찔린 내 영혼아총급히 하나님께 피하라강제로 주입된 거짓을 토하라자기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자기 성취로 허망하여지지 말며전리품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헤세드 외에는아무 것도 행할 수 없는전능하신 하나님이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리니나의 영혼아 그..

강대상 앞에서

강대상 앞에서  “썩 내려가지 못해! 여자가 어디 강대상에를 올라가?” 어린 마음에 수치심이 파란 멍처럼 맺히기 시작했던 것은 장로님의 호통 때문이었다. 예배당 청소 봉사 차 물걸레질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1980년대, 그 때는 그런 일이 왕왕 일어났다. 그 후로 1990년대를 지나 21세기가 되고도 2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시대를 따라 강대상은 더 이상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들도 그곳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이 보통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보통의 일이 내게도 일어나게 되었다. 물걸레가 아니라 성경을 들고서 강대상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미국이나 선교지가 아니라 바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치심을 주입했던 한국에서. 당혹스러웠다. 전달해야할 메시지 준비가 갈..

몸과 이야기하다, 언어와 춤추다

이시다 센의 책,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하며 화제를 전환하겠지. 그런데 나는 이야기를 중간에 끊고도 끊었다고 자각하지 못한다. 취하면 망설임 없이 더, 훅하고 끼어든다. 나중에야, 끙끙 앓는 날이 늘어났기 때문에, 한 이야기 또 하면 알려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렇지만 다정한 사람은 분명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해보기로 했다. -본서 중에서  이쯤 되면, 디졸브의 귀재라고 해야겠다. 의식의 흐름대로 마구잡이로 써나가는 데도 매끄럽기 짝이 없다. 심리스(Seamless)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중첩의 속도가 빠르지만, 시끄럽다거나 어지럽다기 보다는 대체로 조용하고 한가롭다. 내용과 문장, 그 안팎의 속도 차이가 만들어내는 묘한 느..

진로 선택의 상책

진로 선택의 상책  가을이다. 기도하기 적당한 날씨들이 줄지어 대기 중이다. 블루치즈 같이 쿰쿰한 새벽, 교회가 이른 기지개를 켠다. 덩달아 애써 마음을 먹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새벽을 깨우고 있는 나. 이미 작정된 빌립보서가 이른 비로 쏟아지자 가물어 메마른 마음들이 해갈을 시작한다.  “요즘의 나는 자궁 속에서 출산을 앞두고 있는 막달의 태아인 것처럼 느껴져.”  하천길을 걸으면서 내가 말했다. 진로 선택이라는 예정된 시기가 다가오자, 그에 따른 압박감이 갈수록 강하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현재의 상황이 자궁 안처럼 편안하긴 하지만, 출산 예정일은 미뤄지는 법이 없다. 결국 나는 출산 될 것이고, 어디에서 태어나든지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야 한다.  할 수 있는 일들과 하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