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 716

주름을 지우지마라

이제민의 책, 를 읽고.  제법 혼쭐이 났다. 이 정도 분량의 책을 이토록 오랫동안 붙들고 읽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처음에는 매우 가볍게 읽힐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시작된 독서는 더러는 뜻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어서, 많게는 뭉뚝하게 깎아 손에 쥔 연필로 새까맣게 줄을 치다가 책장 넘기는 속도가 달팽이 보다 못하게 되어버렸다. 같은 기독교 가문이지만, 큰집이라 할 수 있는 카톨릭 신부님이 쓰신 책인지라 개신교 신자인 내게는 퍽 생경한 부분이 많기도 했을 뿐더러, 아직 못다 늙은 처지여서 깨닫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부분은 개신교 신학의 약점을 보강해준다는 점에서 좋았다.   창세기에 따르면 시간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첫 작품이다. 하느님께서 창조 첫날, 밤과 낮..

아라카르트 없는 하나님의 선물

아라카르트(a la carte) 없는 하나님의 선물   한식은 기본적으로 세트 메뉴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시키면, 밥과 여러 반찬들이 의례 같이 나온다. 이 때, 반찬은 각각의 식당에서 제공해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야만 한다. 손님은 그것들 중 좋아하는 것은 먹고, 그렇지 않는 것은 손대지 않으면 그만이다. 반면, 서양 식당에는 아라카르트(a la carte)가 존재한다. 세트로 제공되는 요리들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골라서 주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메뉴 구성의 주도권을 손님에게 쥐어주는 것이다.  선물 중에도 세트로 구성된 것들이 있다. 하지만 선물 세트와 관련해서 아라카르트는 존재할 수 없다. 즉, 선물을 받는 수혜자(受惠者)는 세트로 구성된 선물들 중 일부만을 골라 받을 수 없다. 전부를..

은혜의 인플루언서

은혜의 인플루언서(influencer)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의 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저자는 수많은 1인칭 화자들이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저마다의 관점으로 이야기한 것들을 한 데 엮어 보여줌으로써 결국, 독자로 하여금 사건을 전지적 시점으로 조망하게 만들어준다. 바울로 말할 것 같으면 노벨 문학상을 압도하는 작가다. 그래서였을까? 에베소서 2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마치 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공중보다 높은 하늘로 수직상승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 갇혀 있던 내게 전지적 작가 시점이 허락된 것은 그때였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의 책, 를 읽고.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 오래된 김치는 찌개나 전이나 볶음밥에 넣어 먹고, 새로 담근 김치는 반찬으로 먹었다. 내가 먹을 양보다 더 많이 김치를 만들었을 땐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부엌에 식료품 유리병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병에 종류 별로 담긴 김치는 익은 정도가 제각각 달랐다. 조리대 위에선 담근지 4일 된 총각김치가 새콤하게 익어갔고, 냉장고에선 갓 담근 깍두기가 수분을 내보내고 있었다. 도마 위에는 커다란 배추 한 포기가 반으로 쩍 갈라진 채 소금물에 절여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멸치액젓, 마늘, 생강, 고춧가루의 풍미 속에 익어가는 향긋한 채소 향이 그린포인트의 작은 부엌에 물씬 풍겼다. 나는 엄마가 김치..

느부갓네살에게

느부갓네살에게 그러고 보면, 분수에 맞게 사는 것만큼 슬기로운 것도 없다. 사람이 제 분수도 모르고 엘로힘이 되려고 했다가는 금수만도 못하게 되는 법이니. 내게도 있는 바벨탑 무의식이 그대에게 없을 리가. 더욱이 정복과 토목에 일가견이 있는 그대였으니 시날 평지로부터 바벨론을 넓혀갈 때에 드높은 지구라트를 건설해갈 밖에. 그러나 번영은 축복이 아닌 시험. 꼭대기에 선 사람의 마땅함은 감사와 찬송이나 엘로힘이나 된 듯 우쭐거리면 미끄러져 짐승 이하로 추락해버리는 법. 일곱 때가 지나고 나서야 겨우 도착할 깨달음은 모름지기 느부갓네살이란 확률의 엘로힘에 의해 무작위로 당첨되는 것일 뿐. 그러고 보면, 한도를 분명히 알고 받아들이는 것만큼 알맞은 정도도 없다. #Apr. 20. 2024. 사진 & 시 by 이..

영적 시력 발달

영적 시력 발달 물 한 방울 없는 곳인데도 나는 잠수(潛水)를 하는 것 같다.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을 때면 말이다. 나이는 급히 먹는 종류인지, 어느 날 느닷없이 노안(老眼)이 들이닥쳤다. 하는 수 없이 독서를 위해서 장비를 들여야만 했는데, 처음 돋보기를 썼던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 돋보기 넘어로 보이는 크고 선명하게 보이는 활자들의 행렬은 나로 쾌재를 부르게 했다. 그러나 쾌락의 유통 기한은 짧은 법. 한 동안 지면을 응시하던 눈을 들어 원경(遠景)을 바라보았을 때, 느닷없이 멀미가 들이닥쳤다. 갑자기 물속에 잠긴 듯 온통 흐릿해진 풍경 때문에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신앙의 연륜이 쌓여간다는 것은 멀고도 넓게 볼 수 있는 영적인 렌즈를 갈고 닦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리스도 안의 풍경

그리스도 안의 풍경 나의 구원은 일종의 프랙탈(Fractal)이다. 그것이 전 인류의 구원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프랙탈(Fractal)이란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수학인 기하학의 연구 분야로, ‘자기 유사성’을 갖는 기하학적 구조를 말한다. ‘자기 유사성’은 부분의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자연계의 라이스식 해안선이나 산맥의 모습, 혹은 나뭇가지의 모양이나 성에가 자라는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들의 부분은 전체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 때까지 하나님은 선교라는 방식을 통해 전 인류를 대상으로 구원을 확장시..

하나님 앞의 생

하나님 앞의 생 나의 선택은 변함이 없었다. 스스로 자리를 정할 수 있는 대학과 대학원 교실에서 나는 줄곧 같은 자리에 앉았다. 교단을 중심으로 X축으로는 앞에서 두세 번째 줄, Y축으로는 맨 오른쪽에 놓인 의자를 차지했던 것이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그곳이 교수님의 시각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인 까닭이었다. 90년대 교실에서 학생들은 언제나 높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수님 앞에 앉아 있었다. 헤게모니(hegemony)는 대중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에 피어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강의의 주도권은 교수님의 전유물이었다. 이 때 교수님과 학생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존재해야 한다. 거리가 객관성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며, 거리 없이 대상(학생)을 바라본다거나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교실..

하나님의 아들이 된 여자

하나님의 아들이 된 여자 갈수록 어려워지는 일들 중에 선택이 있다. 얼마 전, 드립백 커피를 구입할 목적으로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보았다. 수십 가지의 상품들이 저마다 예쁜 사진과 함께 현란한 자기소개로 간택을 갈구해왔다. 이전 것보다 더 좋은 상품이 있을 거라는 짐작으로 하나하나 꼼꼼히 훑어보다가 나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사지선다형 시험지에 단련된 까닭인지, 선택지가 다섯이 넘어가 버리면 종종 과부하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상품들을 뒤로한 채 이전에 구입했던 상품을 다시 주문했다. 우리 시대의 선택 장애는 일반적인 일이다. 산업과 기술의 발달로 선택지가 매우 세분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선택(실패)과 그에 따른 책임을 두려워하는 사회 심리적인 압박이 선택하는 일을..

바울의 카덴차

바울의 카덴차 나의 것은 무려 30년산이다. 폴리 그램 레이블(Poly Gram Label)에서 출시한 카세트테이프 안에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일명 ‘황제’)이 담겨있다. 나의 황제는 마우리지오 폴리니의 피아노와 카를 뵘이 지휘하는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녹음된 것으로 오래 들어 귀에 익을 대로 익어있다. 비록 낡긴 했어도, 지금도 카세트 안으로 입장하는 날이면 으라차차 노익장을 과시하며 황제다움을 들려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황제의 시작은 카덴차(cadenza)로부터다. 카덴차는 말하자면, 연주자의 스웨그(swag) 시간이다. 그것의 사전적 의미는 악곡이 끝나기 직전에 혼자서 부르거나 연주하는 기교적이며 화려한 부분을 말하는데, 주로 독주 악기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