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

진로 선택의 상책

창고지기들 2024. 10. 12. 10:59

 

 

 

 

 

진로 선택의 상책

 

 

가을이다. 기도하기 적당한 날씨들이 줄지어 대기 중이다. 블루치즈 같이 쿰쿰한 새벽, 교회가 이른 기지개를 켠다. 덩달아 애써 마음을 먹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새벽을 깨우고 있는 나. 이미 작정된 빌립보서가 이른 비로 쏟아지자 가물어 메마른 마음들이 해갈을 시작한다.

 

 

“요즘의 나는 자궁 속에서 출산을 앞두고 있는 막달의 태아인 것처럼 느껴져.”

 

 

하천길을 걸으면서 내가 말했다. 진로 선택이라는 예정된 시기가 다가오자, 그에 따른 압박감이 갈수록 강하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현재의 상황이 자궁 안처럼 편안하긴 하지만, 출산 예정일은 미뤄지는 법이 없다. 결국 나는 출산 될 것이고, 어디에서 태어나든지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야 한다.

 

 

할 수 있는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 그리고 해야만 할 것 같은 일들(주인께서 내가 하길 원하는 일들)을 늘어놓는다. 기존에 해왔던 방식들과 함께 전혀 새로운 방식들도 상상해 본다. 하고 싶은 일들과 전혀 새로운 방식들이 우선순위에 놓인다. 그리고 해야만 할 것 같은 일들과 기존의 방식들이 하위권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하루에도 여러 번 뒤바뀌는 것이 진로 선택 월드컵이다. 갈수록 어렵고 어지러운 마음. 그것이 고난을 따돌리고 싶어하는 욕망 탓임을 빌립보서는 지적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빌립보서 1:29-30)

 

 

인생의 목적을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에서 Communion With God(하나님과 연합함)으로 선회한 것은 케냐에서였다. 그런데 사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앞면이든 뒷면이든 어쨌든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당연히 따라오는 종류다. 그럼에도 굳이 앞면과 뒷면을 뒤집었던 것은 케냐에서 겪었던 고난으로 점철된, 고난으로 풍성한 고통과 눈물 때문이었다. 선교사인 채로 겪었던 이해할 수 없는 고난들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Soli Deo Gloria보다는 Communion With God이 유용했던 것이다.

 

누구보다 친밀하게 하나님과 연합했던 그리스도. 그분이 보여주신 모범에 따르면, 하나님과의 연합에 있어서 고난은 디폴트다. 그것은 제거해야할 이물질이나 불순물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당연할 뿐만 아니라 매우 필수적인 요소다. 따라서 고난을 피할 요령으로 욕망을 따라 진로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방해하는 고난의 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에휴~

 

 

돌이켜 보면, 고통 없는 성장은 없었고, 원하지 않는 것을 마침내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수동태) 비로소 성장할 수 있었다. 나의 원함이 아니라 그분의 원함에 따라 진로가 선택된다면, 아마도 나이 오십이 넘은 나의 성장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성취될 것이다. 그러니 진로 선택 월드컵 따위는 버리고, 그 분의 때를 기다리면서 오늘 맡겨진 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상책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Oct. 12. 2024. 글 & 사진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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