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we there yet?
아이들이 어릴 적에 함께 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갈 때마다 끊임없이 들어야 했던 문장이 있었다.
"Are we there yet?"
처음에는 느슨한 시간차를 두고 반복되던 것이 갈수록 숨 가쁘고 강박적인 질문으로 변질되곤 했었다. "Not yet~"이라는 부드럽고 성실한 답변이 퉁명스러운 으름장이 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다 도착하면 알려줄 테니까, 귀찮게 자꾸 묻지 말고 기다려!“
살다보면 길고 깊은 터널과 같은 어둠을 지나야할 때가 반드시 있다. 그럴 때면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질문이 있다.
“아침은 언제 오는 거지?”
길고 깊은 어둠 속에서 견디고 또 견디던 어떤 사람이 선지자 이사야에게 물었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이사야 21:11)
대체 아침은 언제 오는 것이냐는 반복적인 질문에 선지자는 답했다.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이사야 21:12)
하나님의 마음과 눈을 일부 공유했던 선지자 이사야. 그는 역사의 파수꾼으로서 밤의 끝인 아침과 그 아침의 끝인 밤을 모두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 밤의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자에게 당도할 아침을 전했다. 그러나 그 아침이 지나고 나면, 또 다시 밤이 찾아올 것이라는 잔인한 현실도 잊지 않게 했다. 그러면서도 묻고 싶으면 물어도 된다고 말했다. 얼마든지 대답해주겠다는 긍휼의 의중을 괄호에 넣은 채.
“왜 하필 제가 이렇게 힘든 밤을 맞아야 하나요? 이 밤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요? 이 밤은 언제까지 계속 되지요? 언제쯤 아침이 올까요? 아니, 아침이 오기는 할까요? 하나님, 제 신음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아니, 당신이 계시기는 한 건가요?”
선지자는 알고 있었다. 가슴을 찢으며 묻고 또 묻는 일이 누군가로 하여금 깊고 추운 밤을 견디게 해준다는 사실을. 그래서 "아직 다 안 왔어?" 라는 아이들의 거듭되는 질문에 짜증을 냈던 나와는 달리, 선지자는 묻고 싶다면 얼마든지 물으라고 했던 것이리라.
지난 성탄절에 가족 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선택한 하나님의 형용사는 ‘놀라운 카운슬러이신’이었다. 더해지는 어둠과 곱해지는 좌절과 제곱되는 슬픔 속에서 묻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현실이 나의 것인 까닭이었다. 2023년의 끝은 깊은 밤 속으로 함몰되어 꺼져가는 중이다. 허나, 보이지 않는 중에도 아침은 준비되어 있고, 어떤 질문이든 대답해 주실 임마누엘이 약속대로 함께 하신다. 깊은 침묵이 답일 때가 많긴 하지만, 물을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그분께 묻고, 또 묻는 일을 멈추지 않기로 한다.
"Are we there yet?"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도서 11:1)
#2023. 12. 30.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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