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경외심

창고지기들 2024. 12. 12. 10:52

 

 

 

 

 

대커 캘트너의 책, <경외심>을 읽고.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경이의 순간은 어떻게 내 삶을 일으키고 지탱해주는가” -책의 부제

 

 

부주의한 오산이었다. 캘트너 씨의 경외심은 ‘그 경외심’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경외심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가지고 있던 탓에, <경외심>을 읽는 일은 처음부터 순탄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게다가 나의 경외심은 원점 타격용이나, 캘트너 씨의 경외심은 융단폭격용이었다. 독서하는 내내 너의 경외심이란 기껏해야 내가 말하는 경외심의 사소한 일부분일 뿐이라는 캘트너 씨의 코웃음이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내게 캘트너 씨의 경외심은 널리 팔아먹기 위해 대중화시킨 보급형 경외심으로 보였다. 그리고 마치 일군의 과학자들이 산업화를 위해 자연을 훼손시켰듯이, 심리 과학자인 그가 상업화를 위해 거룩한(구별성) 단어를 오염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의 경외심은 나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라는 것을. 

 

나의 경외심은 인격적 하나님에 대한 관계적 태도(두려운 친밀함)로 경배를 가져오는 것이다. 반면, 그의 경외심은 대상에 대한 압도적 느낌(눈물, 오싹함, 탄성 등)으로 인지 발달(?!)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때 경외심의 대상이란 8가지로써 인간의 심적 아름다움, 집단 열광, 대자연, 음악, 시각디자인, 영성과 종교, 삶과 죽음, 그리고 통찰을 말한다. 캘트너 씨에 따르면, 이러한 대상들과 맞닥뜨렸을 때 경외심을 경험할 수 있고, 그러한 경외심을 통해 삶은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 즉, 자기 인지 체계를 압도하는 거대한 대상 앞에서(한 순간에 위로 치솟아 올라 익스트림 롱 부감 쇼트로 자신이 속한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비로소 자신의 위치(분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됨으로써 기존의 인지 체계를 변화, 발전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경외심을 통한 삶의 변화란 인지 발달과 맞물려 있고, 그것의 발달의 방향은 개인에서 공동체로, 개별화에서 통합화로 진행하게 된다.

 

 

발생적 인식론의 창시자 장 피아제(Jean Piaget)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생각은 인간의 지식이란 본질적으로 활동적(active)이라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실재를 변환의 체계로 동화하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특정한 상태가 어떻게 해서 초래된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실재를 변환하는 것이다.”(‘장 피아제의 발생적 인식론’ 중에서) 이러한 피아제에 의하면, 인간의 인지 발달은 도식의 동화, 조절, 평형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도식(schema)이란 인지와 사고의 틀을 말한다. 그리고 동화(assimilation)는 기존의 도식에 잘 들어맞는 새로운 경험과 사고를 받아들여 일반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또한 조절(accommodation)은 기존의 도식에 맞지 않는 새로운 경험이나 사고를 위해 도식을 변경하거나 새롭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고, 마지막으로 평형(equilibration)은 동화와 조절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적응 과정을 말한다.   

 

 

결국, 캘트너 씨가 말하는 경외심이란 동화를 통해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왔던 도식으로 하여금 조절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전혀 새로운 경험이나 사고에 의한 충격을 의미한다. 이와 중에 피아제의 도식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정보를 처리할 때 관여하는 피질 영역)로 번역된다. 이는 융이 말하는 에고(Ego; Self의 부분집합인)이자, 니체가 말하는 패권을 잡은 자아의 의식을 의미할 테다. 결국, 패권 다툼을 통해 의식의 왕좌에 앉은 자아이자 에고가 자신의 왕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느닷없는 경험이 경외심을 통해 주어진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경외심은 일상의 수많은 경이의 순간을 통해 제공받을 수 있으며, 경외심을 잘 느끼는 자들이 성장하고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심리 과학적 입장에서 자기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작가는 수많은 과학적 근거를 대기에 근면했다. 때문에 책속의 문장들은 만두 속보다 더 잘게 다듬어진 정보들로 빡빡하게 채워져 있었다. 가뜩이나 정보처리에 있어서 엔트로피를 정통으로 맞은 나의 의식이기에, 책은 피넛버터보다 더 뻑뻑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게으른 의식에 대한 일시적 처방으로 시종일관 낭독으로 독서하기를 선택했다. 별로 사용하지 않던 성대를 사용하느라 자주 목구멍이 칼칼해지는 괴로움을 겪기는 했으나, 눈과 입과 귀와 손과 뇌의 조화로운 협력에도 불구하고 의식이 그들과 상관없이 전혀 다른 곳을 헤맬 수도 있다는 경험 안에서 놀라운 경이감을 느끼기도 했다. 헐~ 대체 뭐냐, 너란 의식은?!

 

 

 

#Dec. 12. 2024.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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