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민의 책, <지식인의 옷장>을 읽고.
“늙지 않는 얼굴은 없어도
늙지 않는 스타일은 있다”
한 번도 없었다.
의식주(衣食住) 중에서
식주(食住)는 나의 꾸준한 관심사였으나,
의(衣)는 단 한 번도 관심을 둔적 없었다.
심지어 유년기 시절,
그 좋아했던 종이 인형 놀이를 할 때조차도
내가 즐겼던 것은 옷 갈아입히기가 아니라 이야기 꾸미기였다.
물론, 그와 같은 성향은 관성의 법칙을 성실히 따라왔다.
그러던 중에 작은 변화가 생겨났다.
의복에 대한 호기심 내지는 흥미가 막연히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환경이 변한 탓이지 싶다.
생존 자체가 과제였던 선교지에서 떠나
삶의 질을 따지는 고국에 정착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옷과 밀접한 단어인 ‘패션’은 내게도 퍽 익숙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꾸준히 무지해 왔다.
무지를 깨달은 내가 하는 선택은 번번이 천진난만하다.
책을 골라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낙점된 패션 관련 서적의 제목이 <지식인의 옷장>,
오래전에 걸린 지적 허영심은 불치병인 게 분명하다.
패션을 알게 되는 것은
그날의 옷차림을 넘어 우리 삶에 변화를 일으킨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패션을 활용하면
타인의 시선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가볍게 받아들이다 보면
삶을 유동적으로 만드는 데 재미를 느끼게 된다.
패션의 본질은 변화다.
패션에는 변화하기 위한 에너지가 있고,
변화해야 하기 때문에 패션은 가볍다.
그 가벼운 속성이 우리의 무거운 삶에 재미를 준다.
-본서 중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연합, 그것은 내 삶의 목적이다.
그 신비로운 삶의 목적에 가닿기 위해
나는 그리스도(로고스)라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따라 걸어가는 중이다.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할 뿐더러
곳곳에 육중한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자칫 무겁고 우울하고 우중충한 분위기가 되기 십상인 여정이다.
그러나 그 길의 안내자이자,
그 길 자체이기도 하신 분의 안내 지침은 정반대다.
즐겁고 기쁘게, 가볍고 경쾌하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어갈 것!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쩌면 패션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변화를 본질로 하는 패션의 가벼움과 재미를 무거운 삶에 들일 줄 안다면,
가볍게 옷을 갈아입으면서 변하지 않는 진리의 길을 걸어간다면,
그 역설로 인하여 나의 삶은 예전 보다 훨씬 더 균형 잡힐 수 있을 테다.
패션은 매너 있게 타인을 고려하면서도
나 자신의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패션에서 ‘나’는 향유의 주체이자 객체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은 흥미롭다.
-본서 중에서
그러고 보면, 패션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방식들 중 하나다.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으로써의 배려와 고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써의 가꿈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나와 같이
자기 실수에 연연해하면서 심히 자책하는 종류들이 꽤 있다.
그런 부류들에게 패션은 도움이 될 듯싶다.
패션의 실패로 놀림거리가 되었을 때
그것을 장난스럽게 가볍게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사소한 자기 실수들에 대해서도 관대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실수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존재가 아담의 후예다.
실수에 심각한 대신에 그것을 선뜻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삶에 유연성과 즐거움을 더해줄 것이다.
그러니 패션이라는 놀이를 통해 유연성을 길러보자.
요즘 입을 옷이 없어서 옷을 사야 한다는 말은
진짜 입고 다닐 옷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익숙해진 현실의 옷이 아니라 패션 판타지를 누리고 싶다는 뜻이다.
그런데 막상 쇼핑을 하러 가면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사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내 옷장 속의 익숙해진 패션에는 판타지가 없지만
최근 출시되어 새로 전시된, 환한 조명 속 패션에는 판타지가 있기 때문이다. …
패션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이렇게 과장될 때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의도적인 콘셉트가 존재한다. …
패션에서의 내추럴은 내추럴하게 보이기 위한 ‘꾸밈’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내추럴 메이크업은 메이크업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기술이다.
-본서 중에서
무작정 패션 트렌드를 따라가면서 유행에 휩쓸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일리 없다.
패션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인만의 콘셉트가 있어야 한다.
성경에 있어서 옷과 관련하여 언뜻 떠오르는 것을 꼽아 보자면,
거룩한 제사장의 옷, 엘리사에게 던져주었던 엘리야의 겉옷,
그리고 그리스도의 옷 정도다.
이는 소명(제사장, 선지자)과 정체성(그리스도인)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즉 패션을 즐기되 세속적인 패셔니스타가 되기 위해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즐겨야 하는 것이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2:9-10)
바울은 패션과 관련해서 단정하게(modestly) 옷을 입으라고 권면했다.
스타일링을 할 때 겸손하게, 얌전하게, 삼가 해서(TPO) 하라는 것이다.
즉, 값비싼 명품 브랜드를 선호하는 대신에
자신의 체형이나 자신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아이템들을
자신의 경제적 수준에 맞게 선택하라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만 과도하게 집중하지 말고,
상대방과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스타일링 하라는 것이다.
나아가 바울은 눈에 보이는 스타일링보다 중요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태도임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를 가질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패션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온화하고 인자한 표정,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믿음직스럽고 당당한 자세,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말씨가
그리스도인의 패션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패션에 관심을 가져보라는 제안은
단순히 옷을 잘 입으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말과 같다.
패셔니스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소한 스트레스를 없애고
자신을 더 사랑해보기 위해,
반복되는 일상에 재미와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패션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본서 중에서
내게는 나와는 달리 어려서부터 패션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딸이 있다.
이미 중·고등학생 시절에 자기만의 스타일(Gloria’s Look)을 가졌던 그녀다.
“이건 글로리아니까 소화할 수 있는 옷이야!”라는 평가를 종종 들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교생실습 중이다.
중학교 영어 교생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들에게
한국어가 모국어인 교생이 영어를 가르치다니, 꽤나 흥미롭다.
문득, 그녀의 요즘 패션이 궁금해진다.
어떤 옷들을 어떻게 스타일링해서 입고 출근하는지 상상해본다.
물론,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이상의
훌륭한 편집(스타일링) 실력을 선보일 그녀일 테다.
모쪼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표정과 태도로
크리스천 스쿨 교생 룩을 완성함으로
더욱 즐겁고 재밌는 교생 실습을 향유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Feb. 12. 2022. 글 by 이.상.예.
'그 여자의 보물창고 > HIS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부 전선 이상 없다 (0) | 2022.03.12 |
---|---|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0) | 2022.02.26 |
땅의 예찬 (0) | 2022.01.29 |
동물농장 (0) | 2022.01.08 |
생의 실루엣 (0) | 2021.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