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땅의 예찬

창고지기들 2022. 1. 29. 10:53

 

 

 

 

 

한병철의 책, <땅의 예찬>을 읽고.

 


꽃피는 정원에 머물면서 나는 다시 경건해졌다. 

과거에 에덴동산이 있었고, 또한 미래에도 있을 것임을 믿는다. 

언제나 새로 시작하고 그를 통해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놀이할 의무가 있다. 

노동이나 성과는 놀이를 파괴한다. 이는 맹목의 번뜩이고 말없는 행동이다. 
이 책의 많은 구절은 땅과 자연을 향한 기도이자 고백, 곧 사랑의 고백이다. 

생물학적인 진화Evolution 란 없다. 

모든 것은 신의 혁명Revolution 덕에 생긴 일이다. 

나는 그것을 몸소 경험했다. 

생물학은 결국에는 신학, 즉 신의 가르침이다. 

-본서 중에서

 


철학자가 쓴 에세이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넘겨보니, 

그것은 마치 부엌에서 일하면서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썼던(?!) 로렌스 형제처럼 

정원에서 일하는 수도사가 쓴 책이었다. 

일종의 경건 에세이, 

혹은 영성 에세이로 읽히기에 충분한 문장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꽤 즐겁게 읽었던 나로선 뜻밖의 횡재였다.

 

 

땅은 예술가, 놀이하는 여인, 유혹하는 여인이다. 

땅은 낭만적이다. 

내게 감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잔뜩 주었다. 

생각하기란 감사하기다. … 

땅은 아름답다, 아니 거의 마법을 지녔다. 

우리는 땅을 보호해야 한다. 

보호하는 태도로 대하고, 잔인하게 착취하는 대신 찬양해야 한다.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보호하라는 의무를 지운다. 

나는 그것을 배웠고 경험했다. 

-본서 중에서

 

철학자이자 작가인 한병철은 또한 정원사이기도 하다. 

책은 어느 날 땅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날카로운 욕구에 굴복한 작가가 

정원사가 되어가는 3년 동안의 경험을 엮은 것이다. 

에세이와 일기를 엮어놓은 책은 이름뿐인 명장 말고,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명장이 구워낸 명품 수제 쿠키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쿠키의 식감은 부드럽게 부서지되 

마치 입안에 엎질러지듯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종류다. 

물론, 이 책은 그런 종류의 식감을 내는 쿠키는 아니었다. 

다소 강도가 높은 편이었으나, 

재료 본연의 향기와 맛을 느낄 수 있어서 퍽 만족스러웠다. 

사실, 단 한입, 그러니까 첫 문장만으로도 충분했다.

흔해빠진 대중화된 쿠키와는 달리, 

엄선한 고급 재료(레퍼런스)들로 잘 구워낸 책이라는 것을.

 

 

정원에서 일하게 된 뒤로 나는 시간을 다르게 느낀다. 

시간이 훨씬 더 느리게 흐른다. 시간이 확장된 것이다. … 

정원의 시간은 타자의 시간이다. 

정원은 내가 멋대로 할 수 없는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모든 식물은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정원에서는 수많은 저만의 시간들이 교차한다. 

가을크로커스와 봄크로커스는 모습은 비슷해도 시간감각이 전혀 다르다. 

모든 식물이 매우 뚜렷한 시간의식을 갖는다는 것, 

어쩌면 오늘날 어딘지 시간을 잃어버린, 

시간이 부족한 인간보다 심지어 더욱 시간의식을 갖는다는 것이 놀랍다. 

정원은 강렬한 시간체험을 가능케 한다. 

정원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시간이 많아졌다. 

누구든 정원에서 일하면 정원은 많은 것을 돌려준다. 

내게는 존재와 시간을 준다. 

불확실한 기다림, 꼭 필요한 참을성, 

느린 성장이 특별한 시간감각을 불러온다. 

-본서 중에서

 

정원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면서 확장된다는 

저자의 말에 나는 특별히 매료되었다. 

나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면서 축소되는 중이다. 

아날로그적 환경(땅)이 아닌 디지털 환경(모니터)을 

마주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까닭이다. 

급히 달려가는 야윈 시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르는 내게 

느리고도 육중한 시간을 누리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은 

흘려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머지않아 지금껏 가져본 적 없는 욕망, 

그러니까 나만의 정원을 가지고 싶다는 갈망이 

뚜덕대며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중학생 때까지의 나는 정원을 향유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정원이 아니라 밭이긴 하다. 

다채로운 꽃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고 있던 꽃밭과 

고추며, 상추며, 배추를 심어 수확했던 텃밭이 내 집 마당에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 자기 본연의 시간을 따라 기지개하듯 피어난 

꽃들(채송화, 패랭이꽃, 분꽃, 금잔화 등)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어여쁘다. 

문득, 그런 기억이 전혀 없는 나의 아이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에 다양한 나라들을 경험하여 기억할 테니, 

그러면 된 거 아니냐는 방어기제가 즉각 역사한다. 

나는 연약하다. 

 

 

내 정원은 어떻게 해선지 내가 신을 믿게 만들었다. 

내게서 신의 존재는 이제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확실성이고 증거이다. 

신이 계시고, 그래서 내가 있다. 

스펀지로 만든 무릎덮개를 기도방석으로 삼았다. 

그리고 신께 기도드렸다. 

“당신의 창조를, 그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 고맙습니다.! 우아합니다!” 

생각함은 감사함이다. 

철학은 다름 아닌 미와 선을 향한 사랑이다. 

정원은 가장 아름다운 선善, 최고미, 즉 ‘토 칼론to kalon’이다. 

-본서 중에서


책의 시작은 봄이 아닌 겨울 정원으로부터다. 

아니 대부분이 겨울 정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저자는 겨울 정원, 겨울에 피는 꽃에 집중(집착!)하고 있다. 

생명에 적대적인 겨울에 피어나는 꽃을 통해 

몰락과 붕괴에 맞선 순수한 존재의 열망을 강렬하게 느낀 까닭일 테다. 


봄을 더욱 찬란한 축복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은 

겨울의 혹독한 추위 때문일 것이다. 

지독한 겨울을 보낸 자라야 봄도 충만히 누릴 수 있는 법이다. 

마침 겨울을 지나는 중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작은 행운이다. 

특별히 책이 자발적으로 지정해준 배경 음악들 중 하나인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오랜만에 찾아 들었다. 

개인적으로 디스카우의 목소리는 오래 들을 것은 못 된다. 

그가 쏟아내는 우수를 받아 넣기에 나의 호주머니는 아직도 작다.

 

 

디저털화가 소통의 소음을 높인다. 

그것은 고요함을 없앨뿐더러 촉각의 것, 물질적인 것, 향기, 

향내 나는 색깔, 특히 땅의 무게를 없앤다. 

인간Human은 후무스humus, 곧 땅으로 돌아간다. 

땅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우리의 공명공간이다. 

우리가 땅을 떠나면 행복도 우리를 떠난다. 

-본서 중에서


아파트 18층에 살다보니, 

땅에 손을 대기는커녕 발도 대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땅을 떠나 산지도 퍽 오래 되었다. 

작가의 분석대로라면,

나는 18층 높이 더하기 30여 년 만큼 행복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부쩍 울적한 마음이 든다. 

조만간 가까운 식물원이라도 가야겠다.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백마(접사렌즈)를 데리고 가서,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행복한 식물들을 사진에 담고 싶다. 

그렇게라도 행복을 동냥하고 싶어지는 날들이다.

 

 

 

#Jan. 29. 2022.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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