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포스터의 책,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읽고.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누가복음 12:17-18)
그러고 보니, 나는 부자였다.
그러나 누가복음 12장 속의 부자와는 달랐다.
그는 더 많은 곡식을 쌓아둘 요량으로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자 했던 반면,
나는 가득 찬 곳간에 만족했다.
결과는 욕되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굳이 더 읽을 필요가 있나?’ 하며 꼴값을 떨었던 것이다.
묵상가랍시고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쓰고, 나누면서도,
정작 묵상 관련 책에 대한 식욕을 잃어버리다니!
식욕을 잃어 먹지 못하면, 건강하기 어려운 법.
결국 나는 건강하게 살기 위해 애써 먹기로 다짐했다.
협소한 지식의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은 공간에
이 책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를 읽어 꽂아 두기 시작했다.
노력의 결과는 감사하게도 흐뭇한 종류였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명확히 구별할 수 없었던 개념들이
책을 통해서 오롯하게 되었던 것이다.
책의 도움으로 나름 구별하게 된
노력, 연습, 훈련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앎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1 플러스 1은 2인 것을 안다’와 같은 지식적인 앎,
‘자전거를 탈 줄 안다, 밥을 할 줄 안다’와 같은 기술적인 앎,
그리고 ‘그 사람을 안다, 하나님을 안다’와 같은 인격적인 앎이 있다.
노력과 연습과 훈련은 이 각각의 분야를 알아 가는데 필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지식적인 앎을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
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지식이나 정보를 획득하고,
진학이나 진급을 하며, 칭찬이나 상을 받는다.
나아가 지식은 알고 모르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측정되어 수치(점수나 통계)로 환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돈이나 계급 등도 노력을 통해서
결과로 획득할 수 있는 종류라고 할 수 있겠다.
기술적인 앎을 위해서는 연습해야 한다.
이론을 바탕으로 반복적으로 되풀이하여 몸에 익힐 때 기술은 습득된다.
자전거를 타거나 밥을 하는 생활 밀착형 기술로부터,
피아노를 치거나 그림이나 공예품을 창작하는
예술형 기술에 이르기 까지 기술의 종류는 다양하다.
고도의 기술을 갖기 위해서는 물론, 끊임없이 연습해야 한다.
그런데 연습은 종종 훈련과 혼동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연습을 통해 일정 수준의 기술을 습득한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존재가 변하게 된다.
예를 들면, 피아노 학원 선생님과 피아니스트는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이고,
후자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피아니스트 역시 쉬지 않고 연습한다.
하지만 피아니스트의 연습은 단순한 연습이기보다는 훈련에 가깝다.
피아노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알아가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훈련은 인격적 앎을 위한 인간의 행위다.
인격적 앎을 위한 행위란 친밀하게 관계를 맺는 것이다.
친밀한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인격적 상대를 알아감으로써 그것을 닮아가게 된다.
즉, 훈련은 존재의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
군인이나 장교가 되기 위해서 훈련을 받는다.
평범한 사람이 갖은 훈련을 통해 비로소 군인이나 장교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때 변화는 지식적이고 기술적인 변화를 넘어선 존재적이고 인격적인 변화이다.
훈련을 통해 군인이나 장교가 되었다면,
평소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사고와 가치관과 태도에 이르기 까지
일절 군인이나 장교로서 해야 한다.
물론, 완벽한 군인과 장교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 꾸준히 훈련해야만 한다.
그것도 공동체와 함께 해야 한다.
이것이 훈련과 연습(개인이 홀로 하는)의 또 다른 차이점이다.
신앙의 목적이 ‘하나님을 닮아감’이라면,
영적 노력이나 연습이 아닌 영적 훈련이 매우 필수적이다.
물론, 지식적으로 신앙의 내용을 알아가고,
기술적으로 기도하는 법 등 신앙생활의 전반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기초에 불과하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익히지 않으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갈 수 없다.
알지 못하면 닮을 수도 없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노력하거나 연습한다고 성취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것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끊임없이 교제하는 것,
이는 인간 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이자 훈련이다.
지속적으로 훈련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처럼 거룩하게 될 것이다.
영적 훈련에는 금식, 기도, 공부, 예배, 순종, 고독, 고백,
경배, 묵상, 침묵, 단순한 삶, 절약, 비밀 엄수, 희생, 찬양 등이 있다.
이들 영적 훈련들을 아우르는 것이 성경이다.
성경 말씀은 영적 훈련의 트랙이자, 심판과 규칙이자,
코치와 응원단과 동료이자, 음식과 물, 유니폼과 신발이자
모든 것을 공급해주는 원천이다.
성경 말씀과 함께 할 때,
영적 훈련생도는 임마누엘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훈련을 통해서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임마누엘은 예수님의 이름들 중 하나다.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온 존재를 통해 계시하신 분이 예수님이다.
로고스(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나는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친밀히 교제한다.
매일 묵상 훈련장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익힘으로
나의 존재는 서서히 하나님을 닮아가는 중이다.
임마누엘을 빼곡히 누리는 중이다.
떠나온 눈부신 땅 우크라이나가 전쟁터가 되었다.
목 놓아 울며 기도해왔음에도 끝내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낯익은 거리들이 폐허로 변해버린 화면을 목격할 때마다
속이 끓고 아프다.
무능으로 인한 무기력감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묵상가다.
구원이 하나님의 소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크라이나의 구원은 그분께 맡기고
하던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한다.
무기력감을 애써 끊어내며 나는 오늘도 훈련장에 선다.
성경을 펴고 오늘의 말씀을 묵상한다.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자비를 우크라이나에 베풀어 주소서
긍휼을 우크라이나에 베풀어주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누가복음 16:25)
#Feb. 26. 2022. 사진 & 글 by 이.상.예.
'그 여자의 보물창고 > HIS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묵상하는 그리스도인 (0) | 2022.03.26 |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0) | 2022.03.12 |
지식인의 옷장 (0) | 2022.02.12 |
땅의 예찬 (0) | 2022.01.29 |
동물농장 (0) | 2022.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