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은혜의 인플루언서

창고지기들 2024. 5. 4. 10:13

 

 

 

 

은혜의 인플루언서(influencer)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저자는 수많은 1인칭 화자들이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저마다의 관점으로 이야기한 것들을 한 데 엮어 보여줌으로써 결국, 독자로 하여금 사건을 전지적 시점으로 조망하게 만들어준다. 바울로 말할 것 같으면 노벨 문학상을 압도하는 작가다. 그래서였을까? 에베소서 2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마치 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공중보다 높은 하늘로 수직상승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 갇혀 있던 내게 전지적 작가 시점이 허락된 것은 그때였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에베소서 2:1-3)

 

 

사도 바울의 인도를 따라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의 것이었다. 죽은 자들의 특징들 중 하나는 ‘개인’으로 철저히 파편화되었다는 것. 이는 근대(近代)에 실행된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계략으로, 애초에 사람(人)은 독처(獨處)가 아니라 동거(同居)를 디폴트(Default) 곧, 기본 값으로 가진 공동체적 존재다. 비록 개인주의화(個人主義化)가 되어 개인의 자유와 이익과 취향을 추구하고는 있지만, 본질상 공동체적 존재인 까닭에 그들은 소속을 통한 안정감을 끊임없이 열망한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의 대표인 바알(풍요의 신)과 맘몬(돈의 신)이 그것을 놓칠 리 없다.

 

바알과 맘몬은 끊임없이 세상 풍조 곧, 트렌드(trend)로 대중의 관심과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불순종의 아들들을 내세워 트렌드에 따르게 함으로써 거짓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즉, 인터넷상의 유명 인플루언서(influencer)를 통해 각종 다양한 상품을 홍보하면서 그것을 구입하는 것이 곧 풍요와 성공과 안정감을 손에 넣는 것이라고 속였던 것이다. 동시에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것은 개인의 무능과 실패의 증거라는 겁박을 잊지 않았다.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 자크 라캉의 말은 옳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거대한 트렌드의 흐름 속에서 인플루언서가 만들어낸 욕망을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는 개인은 자기 생을 욕심의 제물로 불태우면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었다. 가진 자를 동경하고, 가진 것을 자랑하며, 갖지 못한 자를 조롱하고 무시하면서 겨우겨우. 몹시 슬프고도 두려운 일은 그들 중에 나의 그림자도 있다는 것이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에베소서 1:4-7)

 

 

원문에 의하면, 4절은 ‘그러나 하나님은( ὁ δὲ θεὸς)’으로 시작된다. 설국 열차와 같이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는 세상의 브레이크는 고장난지 오래다. 그러나 망가진 브레이크를 기어이 고쳐서 밟고 마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트렌드를 따라 인터넷 인플루언서와 팔로워들의 욕망을 덩달아 욕망함으로 쪼들리게 겨우겨우 살아가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분의 됨됨이가 대책 없는 긍휼과 사랑으로 풍성한 까닭이었다. 게다가 능력 또한 얼마나 큰지,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히신 후 세상을 통치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에게 믿음을 주사,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고 마셨다. 그 결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은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지고, 그리스도 함께 하늘에 앉혀지게 되었다. 지극히 다행한 일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 중 내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은 나를 ‘은혜의 인플루언서’로 임명하셨다. 나의 임무는 오는 여러 세대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홍보하는 것이다. 물론, 트렌드를 따라 바알과 맘몬을 욕심껏 따르는 자들에게 집 한 칸 없는 나는 얼마든지 가난하게 보일 테다. 그러나 나는 가난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히 부요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바알과 맘몬이 조장하는 개인적인 결핍감, 자기 연민, 실패에 대한 두려움, 탐욕, 자기 자랑 등은 압도적으로 풍성한 은혜에 짓눌려 모조리 박살 났다. 이제 일개 개인이 아니라 임마누엘과 연합한 자로서 안정감과 평안함을 누리고 있다.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나는 나의 피조물 됨, 곧 자기 한계와 분수를 아는 지혜로 자족할뿐더러, 은혜의 인플루언서로서 그리스도를 자랑함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덩달아 누리는 비밀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언젠가 남편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같이 가난한 사람을 만나 지난 29년 동안 당신이 참 고생이 많았네.”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능청스럽게 물었다. 

 

“무슨 소리야? 나는 한 번도 가난해본 적이 없는데. 가난한 당신을 만나 고생했다는 그 여자는 대체 누구야?” 

 

 

실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지극히 풍성하시다. 변방의 한낱 이방 여자인 나에게조차 차별 없이 배달될 정도로. 충분하여 모자람이 일(1)도 없으며, 오히려 낭비라고 할 만큼 아낌이 없이 주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벗어나 하늘에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지적 작가 시점도 갖게 되었다. 가장 낮은 우물 바닥에 누운 시체에서 가장 높은 하늘의 보좌에 앉은 자로의 수직상승! 이렇게 아찔한 사건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할렐루야!

 

 

 

 

#May. 4. 2024.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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