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황당 이방인

창고지기들 2023. 11. 4. 11:17

 

 

 

 

황당 이방인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3:6-9)

 

‘비밀의 경륜’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 역시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 하나님은 은혜의 선물을 받은 자, 곧 성령의 능력을 받은 복음의 일꾼을 통해 비밀의 경륜을 서서히 드러내는 동시에 온전하게 성취해 가신다. 

 

모든 성도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에베소서 3:8)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받았다. 그 근거는 사도 바울의 자기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은혜의 크기와 자아의 크기는 정확히 반비례한다. 은혜가 크면 클수록 은혜를 받은 사람은 스스로를 아무 것도 아닌 자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서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썩 겸손해지는 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도 바울이 스스로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로 고백한 것은 그가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은혜를 받았음을 방증한다.

 

이와 같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은혜를 통해 복음의 일꾼이 된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유명하다. 그의 사역의 대상이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뼛속까지 유대교 율법주의자였던 바울에게 이방인은 어떤 대상이었을까?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에베소 2:12)

 

말하자면, 회심 전의 바울은 단순한 배타적 제노포비아(Xenophobia; 이방인 혐오증)를 능가하는 악성 제노포비아 소유자였다. 즉, 종교적 신념으로 이방인에 대한 폭력도 불사하는 종류였던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대놓고 따르는 스데반의 처형을 지지(사도행전 7:58-8:1a)하는가 하면,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여 잡아오기 위해 혈안이 되어 다메섹으로 달려가기도 했다(사도행전 9:1-2). 그렇게 그에게 이방인이란 율법과 할례에 속하지 않은 끔찍한 혐오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악성 제노포비아 감염자가 임자를 만났다. 다메섹 도상에서 압도적인 은혜, 곧 복음 자체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정면으로 충돌했던 것이다. 강렬한 만남 속에서 그분은 사도 바울 안의 악성 제노포비아를 모조리 박멸하셨고, 그 결과 사도 바울의 삶은 180도 바뀌고 말았다. 율법과 할례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 악성 제노포비아에서 필로제니아(Philoxenia; 이방인 사랑)로 완전히 삶의 방향을 틀어버렸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사도행전 9:19b-20)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의 첫 대상은 물론,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점차 이방인으로 확장되어갔고, 급기야 이방인을 사역의 주 대상으로 삼았다. 물론, 그의 이방인을 위한 선교는 넓은 의미에서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다.(로마서 11:25-29)

 

그런데 이와 같은 복음 사역의 변화와 확장은 정확히 예수님의 전철을 따른 것이었다. 예수님의 복음 사역의 대상 역시 처음에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마태복음 15:24), 곧 유대인이었다. 하지만 사역이 진행되면서 결정적인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이 대상이 확장되었다. 그것은 마태복음 15장 21절-28절에 등장하는 큰 믿음의 가나안 여인과의 만남이었다. 

 

이방 여인은 예수님께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태복음 15:27)라는 위대한 신앙 고백을 했다. 일전에 예수님은 이방인이었던 백부장의 믿음을 놀랍게 여기면서 그의 하인을 고쳐주셨다.(마태복음 8:5-13) 이후 이방 여인의 큰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은 비로소 하나님이 이방인을 복음 사역의 대상에 이미 포함시키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셨다. 그 뒤로 예수님은 이방인들을 고치시고, 유대 땅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이방 땅에서도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는 역사를 보임으로써 이방인에 대한 복음 사역을 본격화하셨다.

 

사도 바울 역시 처음에는 유대인을 사역의 대상으로 하였으나, 이후 예수님의 모범과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의 비밀을 따라 이방인을 복음 사역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그렇게 사도 바울에게 이방인은 확장된 복음의 사역의 대상이자, 복음이 아니었다면 안중에도 없었을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이방인은 누구일까? 복음 사역의 대상이자, 복음이 아니었다면 안중에 없었을 사람이란 과연 누구일까?

 

나의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역시, 점점 확대 되어 왔다. 기독교 유아 교육자를 꿈꾸던 당시, 나의 사역의 대상은 어린 자녀들이었다. 그러다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는 과정에서 사역의 대상은 자녀들을 포함하여 목사님의 아내들, 곧 사모님들로 확장되었다. 그 후 해외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는 선교사님의 아내들 곧 여성 선교사님들까지 포함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평신도 여성 성도들도 사역의 대상으로 점차 흡수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부류, 아직 안중에도 없는 자들은 누구인가? 남성 성도들?!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관계를 맺지 못하여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남성 성도들 말이다.

 

헐~! 완전히 엉뚱해 보이는 결론 앞에 서니 당황스럽다. 여성에게 강단권을 허락하지 않은 교단에 속한 자에게 전혀 알 바 아닌 그들이 아닌가! 키리에 엘레이손!

 

 

 

#Nov. 4. 2023. 사진&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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