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소설, <사랑이 한 일>을 읽고.
신학과 문학은 동일한 경험을 표현하는 각각 다른 두 표현이다.
-도로시 세이어즈의 <창조자의 정신> 중에서
일종의 문학적 강해라고 할 수 있었다.
소설가는 성경, 그중에서도 창세기,
그 중에서도 아브라함 일가의 이야기를 선택하여
문학적(인간의 마음을 중심)으로 해석하여 다시 쓰기를 했던 것이다.
성경에 대한 이러한 다시 쓰기는 묵상의 일과 겹친다.
단적으로 말하면, 묵상은
성경 텍스트와 리빙 텍스트(living text) 사이를 연결시키는 일이다.
이 일의 우선순위는 텍스트 묵상이다.
성경의 텍스트를 거룩한 상상력을 가지고 재해석하여
다시 표현(쓰기)하는 것이 말씀 묵상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텍스트 묵상적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고도의 상상력으로 재해석되어 최고급 표현법으로 기술된 극상품 묵상.
<사랑이 한 일>은 총 5편의 묵상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이야기인 <소돔의 하룻밤>과
세 번째 이야기인 <사랑이 한 일>은 같은 말이 반복되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이는 어떻게든 이야기를 죽죽 밀고 나가야 하는 소설이라는 장르에서는 보기 드문 문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문체가 개인적으로는 낯설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이 성경 묵상의 방법들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을 묵상할 때, 구절을 반복적으로 되풀이 하여 읊조리는 것은 흔한 방법이다.
같은 구절을 맴맴 돌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가 돌아오고,
뒤로 두 걸음 나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묵상의 일인 것이다.
책의 성격이 이렇다 보니,
독서의 과정은 작가의 성경 묵상을 귀 기울여 듣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그가 선택한 본문들은 이미 여러 번 묵상해 본적이 있는 것들이었다.
그의 묵상 중에는 나의 것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있기는 했으나,
나의 것보다는 훨씬 깊이가 있고 훌륭한 묵상들이었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을 짚어내는 능력과
텍스트의 내용을 전혀 새롭게 표현해내는 작가의 실력을
나는 독서 내내 감탄하면서 즐겼다.
나아가, 이미 다 끝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해결할 능력이 없어 여전히 끌어안고 있는 아픈 의문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삭의 장막, 그것은 나의 기업이 아니었다.
이스마엘과 함께 광야로 쫓겨난 이유와
홀로 길 바닥으로 내몰려야 했던 까닭은 그 때문이었다.
애초에 나는 장막의 사람이었고, 줄곧 장막의 사람일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길 위의 사람, 광야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 추측과는 전혀 다른 나에 대한 미래를 계획하신 그분 때문이었다.
덕분에 하갈처럼 광야에서 쓰러져 죽을 뻔도 했고,
야곱처럼 두려움에 떨면서 한뎃잠을 자야했던 지난날이었다.
예언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장막이자, 이삭의 장막 상속자는 에서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당연히 그렇게 될 줄로만 알았고, 그렇게 되는 것이 정당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삭의 장막은 보란 듯이 에서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나는 멀리 쫓겨나야만 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에 휩싸여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내몰린 곳이 물 한 방울 얻기 힘든 광야요,
들짐승들의 습격이 난무하는 길바닥이었던 까닭이다.
현실을 재빨리 받아들여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사실이 서러워 눈물이 흐르기도 전에 훔치곤 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광야와 길바닥도 그분의 땅이었다.
그분은 장막뿐 아니라 광야와 길 위에서도 나를 보살피셨다.
그리고 나로 길바닥도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이제 나는 삼촌 라반에게 속고 또 속아 넘어가면서도 기어이 내 장막을 일구어 돌아왔다.
이삭의 장막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직접 일군 장막이기에 만족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미래를 기다렸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다가오는 것이 미래라면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미래를 기다렸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녀는 기다리는 일을 했다.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기다리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나서서 맞아야 하는 것임을 그녀는 어렴풋이 의식했다.
기다림이 바람이고 참여, 즉 매우 적극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바라지도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기다리는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녀는 서서히 알게 되었다.
-본서 중에서
#Oct. 5. 2021.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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