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옛날 역사 시간에
조 헌트 영감(샌님)이 물었다.
“언뜻 생각하기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역사란 무엇인가, 라고 말이지.
뭐 생각나는 것 있나, 웹스터?”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
토니라 불리는
앤서니 웹스터의 치기어린 말에
조 헌트 샌님은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다며,
‘그게 또한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기도 하다.’고 가볍게 넘긴다.
그런 토니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다.
그리고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감이 없는
엉터리 역사가인지를 증명해낸다.
#2.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 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 그래.’
베로니카의 말은 일종의 예언이었다.
만약 그녀의 말대로
그냥 포기하고 사는 것이
어쩌면 토니에게 나았을 지도 모른다.
허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래서 비로소 감을 잡게 되었을 때,
죄책감과 거대한 혼란이
그를 압도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테이프는 자체적으로 기록을 지운다.
사고가 생기면 사고가 일어난 원인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사고가 없으면 인생의 운행일지는
더욱더 불투명해진다....
모든 정치적, 역사적, 번화가
얼마 안 가 반드시 실망을 안겨주는 것처럼,
성년기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생의 목적이 흔히 말하듯
인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님을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상관없이
기어코 납득시킨 끝에,
고달파진 우리가 최후의 상실까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토니의 말을 따라
그의 말년을 상상해 본다.
최후의 상실까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더욱 고달팠을 그의 말년이 처연하다.
#3.
토니가 쓴 것은
당시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는
일어난 일에 대한 자기 해석을
기억에 떠올리며 적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똘똘한 독자라면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일이다.
방심하는 순간
뒤통수에서 불꽃이 튈 것이고,
처음부터 다시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두 번째 들을 때 독자는
결말을 토대로 그의 이야기를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토니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뒤통수를 맞지 않을 사람이 없고,
그의 이야기를 다시 재구성하지 않을 독자는 없다.
그것이 화자의 힘이고,
또한 역사의 힘일 것이다.
#4.
감이 없기로 말하면
나 역시 토니 못지않다.
요즘 나는 손바닥으로
아픈 뒤통수를 비비면서
처음부터 다시 복기하는 중이다.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일정 수준의 책임으로 인한 죄책감과
전혀 감을 잡지 못했던 결과가 빚어낸
거대한 혼란이 나는 덮치고 있다.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나는 한 동안 고달파져야 할 것이다.
#May. 16. 2014.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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