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썸을 타고 있는 그대에게
「오스 기니스의 인생」을 읽고
저자 오스 기니스는 편파적이다.
이 책의 독자를 구도자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도자의 사전적 의미는
종교적 깨달음이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 책이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저자의 손을 떠난 이상,
그것을 읽기 위해서 반드시 구도자가 될 필요는 없다.
물론, 책을 읽는 내내 구도자가 되라는
저자의 따가운 잔소리를 견뎌야 하겠지만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구도자란 인생의 근원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되,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구축하여,
그 답에 자신을 송두리째 헌신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질문을 위한 시간, 답을 위한 시간,
증거를 위한 시간, 헌신을 위한 시간을 기본 얼개로 삼고 있다.
인생의 근원에 대해 올바른 질문을 만들고,
정답과 증거를 찾아 헌신하는 일은
긴 시간과 집요한 노력을 요구하는 몹시 어려운 과정이다.
그러나 각고의 수고 끝에 찾은 것이 진리라면,
반드시 상을 받게 된다.
세상의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참 안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원제목이
Long Journey Home인 이유일 것이다.
안식의 집으로 향하는 이 긴 여정을 위해서는
모험심, 진지함, 성실함, 정직함, 용기라는 미덕이 필요하며,
비교, 분석, 해석, 통합 할 수 있는
이성적 판단과 논리가 필요하다.
필요한 것이 터무니없이 많아 보이고,
임시로라도 그것들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보이긴 하다.
그래도 지레 포기할 것 까지는 없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고 여정을 떠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초보자들에게는 모험심 하나면 충분하다.
일단 출발하고 나면,
필요한 것들이 어떻게든 변통되는 게
이 길의 신비이기도 하다.
(물론, 애석하게도 항상 그런 건 아니다!)
게다가 그 여정을 먼저 떠났던
수많은 선진들의 도움도 기다리고 있으니
살짝 안심해도 좋다.
저자는 먼 길 떠나는 자들에게 선배들에 의해
이미 구축된 세 가지의 답을 소개한다.
그것은 동양의 신념군(힌두교, 불교, 뉴에이지),
서구의 세속적 신념군(무신론, 자연주의 세속 인본주의),
성경적인 신념군(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이다.
저자는 가능한 공정하게 세 가지 답들을 설명한 뒤,
구도자로 하여금 그 답들의 진위 여부를 개인적으로 시험해보고,
확실한 증거를 찾아보라고 강권한다.
동시에 저자는 자신이 성경적인 신념군,
그 중에서도 기독교인임을 공공연히 한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신념군에 있었던
선배들의 글을 아낌없이 인용한다.
특별히 C, S. 루이스, G. K. 체스터튼,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등이 몹시 자주 인용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오롯이 오스 기니스의 것만은 아니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각 장은 한 개인의 특별한 구도 여정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사적이고도 구체적인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후의 진행은 건조체로 슬쩍 지루해질수도 있지만,
분량이 많지 않아서 독서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책 전체의 내용은 다채로운데,
구도자를 위한 길라잡이로 시작하여,
기독교 변증으로 진행하다,
진리에의 헌신 그러니까 소명을 따르는 삶을 촉구하며 마친다.
그래서 이 책은 초보 구도자보다는
이미 답을 찾았지만, 진리에 헌신하는 대신에
진리와 썸만 타고 있는 사람에게 더 유익한 책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아프면서도 좋았던 부분은 여기다.
동전이 앞면이나 뒷면을 드러내고 정지하듯이,
우리에게도 세 가지, 네 가지가 아닌
오로지 두 가지 선택만이 있다.
우리의 욕망을 진리에 맞추거나,
아니면 진리를 우리의 욕망에 맞추거나 둘 중 하나다....
즉 인간은 본성상 진리의 구도자들이지만,
타락한 인간은 본성상 진리의 왜곡자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진리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진심으로 외쳤던 사람들은
위기의 순간이 오면 “진리가 아니면 무엇이든 괜찮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 동안 진리와 썸을 타는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곳 케냐에서 살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진리의 프로포즈에 응한 후,
그에게 헌신한 결과로 여기에 있는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진리와의 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끔씩 진리를 욕망에 맞추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러다가 훗날 진리가 아니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어깃장을 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며
욕망을 진리에 맞추려고 애를 쓰고는 있지만,
마음은 의식을 속이는데 명수고, 나는 어리석을 뿐이다.
진리는 덫이다.
그것에 의해 잡히지 않고서는 그것을 소유할 수 없다.
당신이 진리를 잡음으로써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당신을 잡음으로써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
-키에르케고르
그래서 나는 기도한다.
능동태도 수동태도 아닌 중간태가 되기로 한다.
잡힘으로써 소유하고, 잡음으로써 소유되는 신비를 기다린다.
인격적이기 위해서 철저히 이성적이기로 한다.
이해할 수도, 표현될 수도 없는 것 앞에서
쩔쩔매기를 마다하지 않기로 한다.
#Aug. 28. 2014.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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