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러니 선스트럼의 책,
통증 연대기(The Pain Chronicles)를 읽고.
슬리핑 뷰티(Sleeping Beauty)에게는
한번이면 충분했던 고통이 내겐 매일 반복된다.
내가 뷰티가 아니라 당뇨병자인 탓이다.
새벽마다 나의 손가락이 오로라 공주처럼
바늘에 찔려 빨간 꽃을 피워내면,
뱀파이어 같은 혈당 기계는 그것을 빨아들여
5초 만에 수치로 환원한다.
이와 같은 혈당체크는 매일 반복되는 의식이지만,
뾰족한 것에 찔리는 고통은 익숙해지는 법이 없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신선해지기만 할뿐이다.
특별히 밤새 자고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피로감이 충천한 아침이면
바늘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
그럴 때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슬리핑 뷰티마냥 쓰러지고만 싶으나,
뷰티가 아닌 나는, 도시락을 싸서
아이들을 등교시켜야 하는 엄마인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이 책의 저자
멜러니 선스트럼(Melanie Thernstrom)은 만성통증 환자다.
만성통증은 조직이 손상되었을 때만 울리는
경보음(통증)인 급성 통증과는 달리,
경보시스템 자체가 망가져서 별다른 이유 없이도
항상 통증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그것도 나의 당뇨병처럼 특별한 치료책이 없는 고질병이다.
그래서 일단 만성통증에 걸리면
병(통증)과 함께 사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혐오스러운 병과 함께 몸을 나누어 쓰는 것은
일반적인 불편함을 훌쩍 넘어서는 일이다.
밉살맞은 병을 철저히 배려(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뇨병자인 나는 병을 배려하느라
자연스런 일상을 인위적으로 고쳐서 고단하게 살고 있다.
혈당을 체크하고, 약을 복용하고, 식사조절을 하고,
의도적으로 애써 운동을 하면서 말이다.
만성통증 환자인 저자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병과 함께 살아가면서 진통제를 복용하고,
물리치료를 받고,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다니고, 통증일기를 쓰고,
통증 자체를 연대기적으로 고찰하기까지 한다.
이 책은 이 와중에 탄생된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태피스트리(tapestry)처럼
씨줄과 날줄로 정교하게 엮고 있다.
먼저, 이 책의 씨줄은 개인적인 통증 역사다.
처음 만성통증이 찾아왔을 때,
그녀는 그것을 자기만의‘앓이’로 만들었다.
즉, 생물학적 병리 현상인 통증을 은유적으로 해석하여
병을 적합하지 않은 방식으로 앓았던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저자는
자기 통증의 원인을 넘보지 말아야 할 상대를 넘본
일종의 형벌이라고 여겨 오래도록 방치했던 것이다.
병을 형벌이나 갚아야 하는 빚과 같은
은유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제대로 진찰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병은 그저 병일뿐이라는 해석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자는 만성통증을
은유로 해석하려는 고집에서 벗어나 진찰을 받기에 이른다.
이 때부터 저자는 통증 일기를 쓰는가 하면
통증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만성통증이
치료받아야 하는 질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완화시키는 방법(약물, 물리치료, 지각 조절),
나아가 완치 법의 가능성에 대해서 알아간다.
다음으로 본서의 날줄은 보편적인 통증의 역사다.
저자는 보편적 통증을 세 개의 연대기적 렌즈로 들여다본다.
세 개의 렌즈란 은유, 종교, 마법의 전근대적 렌즈,
생물학과 질병의 근대적 렌즈, 그리고 뇌 영상 요법과 같은
최첨단 기술의 포스트모던 한 렌즈다.
저자는 이 세 개의 렌즈로 통증을 꼼꼼히 들여다봄으로써
인간이 장악할 수 없는 통증의 신비와 결국 대면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플라시보 효과다.
플라시보(placebo)는 ‘기쁘게 하리라’는 뜻의 라틴어로,
믿는 자에게 응답하는 기도와 같은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플라시보는 가짜가 아니라
실제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실재하는 힘이다.
약이 어떤 효능이 있는지를 알고 먹는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훨씬 큰 효과를 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약을 처방하고,
그 약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다.
그들의 관계가 돈독할수록 효과가 커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요즘 한창 집필 중인
고학년 매일 성경 큐티 원고의 본문은 마가복음이다.
그 중에서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등장하는 부분은 이렇다.
그 중에는(예수님을 에워싸고 밀며 따라오는 사람들 중에는)
십이 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온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의사에게 보이면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진 돈만 다 써 버리고 효과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병이 더 심해져 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사람들 틈에 끼어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 여자는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내가 나을 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즉시, 피가 흐르는 것이 멈췄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마가복음 5:25-20, 쉬운성경)
의학적인 용어인 플라시보 효과는
종교적인 언어인 믿음과 거의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혈루증 앓던 여인은 플라시보 효과로
12년을 앓던 병에서 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무신론자임을 공공연히 한다.
그래서 종교의 부정적 영향(신이 선하다면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하지?)을 받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자신에게는 역사하지 않는
플라시보 효과를 의아해 하기도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은혜’를 떠올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 「중독과 은혜」에서
저자 제럴드 메이는 모든 병의 치료와 치유는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 책에 의하면 중독을 치유 받은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어느 날 갑자기 그냥 중독에서
벗어나졌다(피동!)고 고백한다.
「통증 연대기」의 저자가 만난 만성통증으로부터 벗어난
소수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비결 같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 저자는 그것을 X 파일로 분류했지만,
기독교 신자인 나는 그 파일에 은혜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다.
상당부분 과학적 고찰에 할애하고 있는 이 책은
뜻 밖에도 신비로 마무리된다.
통증에 관한 실존적이고 보편적인 고찰,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연구의 끝이 미스터리로 끝난 것이다.
저자는 통증 전문가 카 박사가 던진 물음을 인용한다.
“고등한 존재가 우리에게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한다면
우리가 그 설명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나아가 저자는 시각 전문가에게 하는 통증 연구가의 말을 인용한다.
“자네는 시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망막의 막대세포와 원뿔 세포가 어떻게 빛 자극을 받아들이는지,
망막의 신경세포가 이 자극을
어떻게 시신경을 통해 전달하는지 따위를 알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해보게.
뇌의 어느 부위에 아름다움이 존재하나?
찾으면 알려주게. 통증은 바로 옆방에 있다네.”
위의 인용들은 욥기에서 압도적으로 쏟아졌던
미스터리한 하나님의 질문들과 닮아 있다.
그렇게 저자는 자기에게 닥친 고통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했던 욥처럼 통증을 잘 모르겠다고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더불어 통증은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웅변하는
인간의 본질적 특징이며, 죽음을 예고하여
자아의 궁극적 사라짐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겸손하게 적고 있다.
여기에 사적인 생각을 보태자면,
통증은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구하게 하는
신비한 도구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읽는 동안 요통과 무릎 통증이 슬그머니 찾아왔다.
쉬엄쉬엄하라는 경고가 주어진 셈이다.
아픈 부위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누워서
눈을 감고 한참 생각했다.
은혜가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기도가 뛰쳐나왔다.
늙어가는 몸을,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을,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Sep. 18. 2014.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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