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운 겨울, 눈,
크리스마스트리, 캐럴송,
크리스마스 발표회, 선물,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
북반구에서 나고 자란 제게
크리스마스는 대략 이런 것들과
함께였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얘기하면
이런 것들이 곧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아니라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즐거워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2003년,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크리스마스를 맞았던 때를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별로 춥지 않던 날씨,
추적추적 내리던 비로 인하여
남가주의 크리스마스는
마치 이가 나간 접시 같았었죠.
그리고 2013년,
남반구 케냐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중입니다.^^;
#2.
우기의 옷을 벗은 12월의 나이로비는
작렬하는 태양의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가장 핫한 시즌으로 접어든 셈이죠.
그래서 저는 문자 그대로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북반구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지라
이곳 남반구에도 있기는 있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나 장식 같은 것 말입니다.
벌써부터 나이로비의 대형(?!) 쇼핑 몰들은
전형적인 북반구 스타일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단장하고는
호객 행위를 하고 있지요.
하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서
따뜻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보는 일은
덥고,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게다가 이곳에는 없는 상록수,
그것도 대형 인조 상록수로 만든
크리스마스트리는 답답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답답한 쇼핑몰을 벗어나는 즉시
북반구용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심장이 뜨거운 태양,
표정이 푸르디푸른 초목들,
뭐든 흔들며 장난하는 바람,
시치미를 떼고 있는
빨간 흙만 변함이 없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이
크리스마스를 오롯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는
단단한 껍질이 벗겨지자
비로소 고소한 알맹이가
맛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나 봅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8:9)
부족함이 한 개도 없으신
절대 부요하신 분께서
가난뱅이가 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한낱 피조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생명을 주관하는 주께서
어리고 연약한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에게
절대적으로 의탁하여
목숨을 부지하는 아기가 되셨던 것입니다.
안전의 가난, 신분의 가난,
물질(material)의 가난, 건강의 가난,
관계의 가난, 영의 가난 등
가난함으로 쩔쩔매고 있는 저에게
부요함을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에
저는 가난한 아기를 만납니다.
가난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제가
가난 자체가 되신 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분은 임마누엘로 저를 위로하시고,
저는 임마누엘로 부요하게 됩니다.
그렇게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부으며
저를 세상에서
가장 부요하게 하는 중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Dec. 24. 2013.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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