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그물을 버리며_

창고지기들 2011. 9. 2. 07:34

 

 

 

 

#1. 그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4:21-22)

 

 

 

그물, 배, 그리고 아버지.

 

야고보와 요한의 집안은

대대로 어부의 일을

 업으로 삼았던 듯합니다.

그 날도 야고보와 요한은

아비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그들 곁을 지나던 예수님이

아비 세베대와 함께

익숙하게 그물을 깁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그물과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을 때,

예수님의 곁에는 이미 같은 업종 출신인

베드로와 안드레가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던지고 있을 때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깁고 있을 때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4:19)

 

 

그물.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잘 손질된 그물을 던져 잡은 물고기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미루어보건대

그들은 그물을 깁는 방법과

그물을 치는 방법에 관한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물에 관한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던 그들을

전혀 다른 일, 전혀 다른 소명으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소명 앞에서 그들은 그물과 함께

배와 아비까지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던 날부터

그들은 더 이상

그물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 가족의 생계를

하늘로부터 직접 책임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따라

그들은 예수님의 뜻대로

기어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그들은

의와 희락과 화평을 누리는

거룩한 어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2. 그물을 버리며

 

 

처음 저희 가족이 미국에 유학을 온 것은

사람을 낚는 그물을 깁는 방법과

사람을 낚는 그물을 치는 방법에 관한

원천 기술을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정교하게 그물을 깁고,

또 능숙하게 그물을 쳐서

많은 사람들(한국 교회)을

그 분께로 이끌어 오기 위해

미국에 유학을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사람을 낚는 그물에 관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나면 가족의 생계는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을 거라고

저희는 어렴풋이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꼬박 8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드디어 사람을 낚는 그물에 관한

원천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을 때,

그 분은 전혀 뜻밖의 곳으로

저희 가족을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4:19)

 

 

한국 교회나

한인 이민 교회를 생각하며

그물을 준비했기 때문에

전혀 생소한 아프리카로 부르시는

그 분의 부름은 무척 의아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저에게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로 부르시는

그 분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하여

저는 계속 마음을 애써 지켜야만 했습니다.

이 와중에 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물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유학 생활이라는

척박한 광야 시절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경험하는

은혜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존적으로 하늘이 내려주시는

만나만 기대하며 살아가는 일은

너무나 힘들고 고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광야 생활이 끝나고

원천 기술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전쟁을 통해 분배된 땅을 일구어

제 스스로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님의 졸업과 함께

유학 생활,

그 크고 두려웠던 광야 생활이

드디어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기대에 부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저희를 가나안 땅이 아닌

또 다른 광야로 부르셨습니다.

 

 

 

지난 7월,

마태복음 4장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그물을 붙들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때 그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동안 내려 주었던

나의 만나가 부족했더냐?”

 

 

“아닙니다. 오히려 충분했습니다.”

 

 

“그러면 왜 그물을 붙들고 울고 있는 것이냐?”

 

 

“계속해서 하늘만 바라보며

구걸하는 거지가 되기 싫은 까닭입니다.

당신이 아니라 제 힘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싶은 불신앙 때문입니다.

저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소서.”

 

 

“믿음을 굳게 하여라.

그물일랑은 버려두고

나를 붙들어라.

그러면 살리라.”

 

 

 

광야에서 나와 보니

다시 광야입니다.

 

지난 미국에서의 광야는

분명 크고 두려운 곳이었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저는 그 광야를 그 분의 품에 안겨서

지나왔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미국보다 더 크고 두려운

아프리카에서의 광야 생활이

시작될 참입니다.

 

그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 분은 제게 자기 힘으로

제 생계를 꾸리고 싶은

가나안의 마음과

가나안의 그물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편안함과 번영을 뒤로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분을 향해 가는 길은

분명 고단하고 가난한 길이지만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한 길이 될 거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그 분의 말씀을 따라

마침내 그물을 버려두고 나니,

저희는 다시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 분만 바라보며

일용할 양식을 구걸하는

거룩한 거지 말입니다.

오늘 한 날 일용할 만나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하는

부요한 거지 말입니다.

 

 

 

#Sep. 1. 2011. 사진 & 글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