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그리스도인으로 빚어져 가는 것,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는 것에 대한 대화다.’
이 책은
이렇게 말문을 연 뒤,
에베소서를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인간의 교회가 아니라!)에 대해서
집요하고도 철저하게 대화를 요청한다.
왜냐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개인적이고 정적인 경건생활 뿐만이 아니라
반드시 공동체적이고 동적인 교회생활을 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유진 피터슨은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자기가 속한 실제 회중을
거리끼는 것이요, 스캔들이요, 어리석은 것이라고
사실대로(!)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고 성숙해지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기에
교회만큼 딱 맞는 조건도 없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성경에는 그리고 교회의 역사에는
‘성공적인’ 회중이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저자는 교회에 대한
이상적이고도 낭만적인 망상(!)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초대교회는 엉망이었고,
바울은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서신서들을 쓴 것이다!)
에베소서 안으로,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토대는 예수님의 부활이다.
즉,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란 부활을 사는 사람이다.
부활이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살 때 우리는
우리의 길이 아니라 예수님의 길을 따르며
결국 그 분의 영광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는 절대로 부활을 살 수가 없다.
부활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팀플레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살기 위해서는
부활의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부활의 공동체 안에서 열심히 부활의 삶을 훈련할 때,
부활을 충만하게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이 세상의 단 하나뿐인 부활의 공동체이자,
체육관이요, 훈련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훈련장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도가 되어야 한다.
성도란 거룩한 무리라는 뜻으로,
거룩은 그 무리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성도라 부르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성도가 된 자들임으로
개인의 취향이나 판단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반드시 부활의 공동체로, 하나의 지체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즉, 교회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임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교회는 본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고,
본인의 입맛에 맞게 수리하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교회는
그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눈을 비벼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처럼 느껴진다면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안약을 사서 발라볼 일이다.ㅋ)
4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이
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간단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
그 만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나의 삶의 자리를 부활의 자리로,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 하나님의 훈련장으로
받.아.들.인 후,
하나님과 성도들과 끊임없이
인격적이고, 친밀한 상호 관계를 맺어가라는 것이다.
이 때 이 끊임없는 인격적인 상호 관계는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핵심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어려워 보이는!ㅠㅠ)
이 책은 유진 피터슨의 책이 의례 그랬듯이
읽는 과정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읽는 과정을 즐기게 해주는 책은 읽는데 아주 오래 걸린다.ㅋ)
이제 그의 언어와 문법과 문체는
내게는 가끔씩 먹어야 하는 얼큰한 김치찌개 같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묵은(!) 그의 책들이
하루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김치찌개는 자고로 묵은 김치로 해야 제 맛이듯이
이미 읽었던 그의 수많은 책들 역시
다시 읽을 때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지금 여기,
곧 케냐, 나이로비, 카렌, AIU, M1은
정확히 부활의 삶의 자리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만도 아주 오래 걸렸음!)
그리고 케냐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로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교회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과 인격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내게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뒷걸음치지는 않을 것이다.
어짜피 나는 아주, 아주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는
아주, 아주 오랜 시간과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니까.
그러므로 지금은 일단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에만 전념하기로 한다.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 해본 사람은 말도 하지마~~ㅋㅋㅋ)
키리에 엘레이손!
#Jun. 16. 2012.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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