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책과 노니는 집’은
내 생애 최초로 읽은 전자책이다.
전자책을 읽게 된 이유는
역시나 케냐 때문이다.
케냐에서는 한국어 책을
구입하기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운송비 또한 만만치 않아서
고육지책으로 나는 전혀 생소한
전자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는 달리
아직 전자책이 일반화되지 않은
한국의 전자책은
그 선택의 폭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내 쪽이었기에
나는 몇 권의 전자책을 다운 받았는데,
그 중 한권이 바로 ‘책과 노니는 집’이었다.
이 책은 ‘문학 동네’에서 주관하는
어린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이 책이 좀 특별했던 것은
장르가 ‘역사 동화’라는 것이다.
즉, 이 책은 조선시대에
한창 서양의 천주학이 박해를 받던 시절,
필사쟁이의 아들 ‘문장’의 눈을 통해서
책과 글의 의미를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특별히 이 책은
‘책 한 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할 수 있는지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문장의 아버지는
천주학 책을 그저 필사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고,
최 서케(책방 주인)는
천주학 책의 필사와 배급을
주관했다는 이유로 도망을 다녔으며,
홍 교리 역시 천주학 책을
소장하고 읽었다는 이유로
커다란 위험에 빠질 뻔하였다.
(문장의 용기와 기지로 용케 벗어나긴 했지만!)
이와 중에 문장 역시
천주학 책을 배달했기에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다.
서유당(書游堂)
즉, 책과 노니는 집은
홍 교리의 서고 이름이다.
어린 문장의 눈을 통해서 보았던
홍 교리의 서유당은
이름값을 제대로 할 만큼
수많은 책으로 빼곡했다.
하지만 홍 교리의 서유당이
서유당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책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서유당이 서유당일 수 있었던 것은
홍 교리가 진짜 책과 놀아서 일 것이다.
즉, 홍 교리는 책과 놀면서
책의 영향을 받고,
책이 말하는 것에 굴복하여
결국 책이 말하는 대로 살았기 때문에
진정 서유당의 주인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는 천주학 책을 통해서
천주교 신도가 되었던 듯싶다.
(정확히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래서 천주께서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하셨다는 가르침을 따라,
그는 한낱 필사쟁이 지망생인 문장과
인격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최 서케나 기생들 역시
인격적으로 대했던 것이리라.
우리나라의 선교 역사의 가장 큰 특징은
선교사 보다 성경이 먼저 들어와서
성경을 통해서 이미 천주(하나님)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 시대가
경전 문화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경전 문화를 살았던 자들에게
경전이란 그저 지식의 보고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하나의 원리요,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자신이 믿을 만한
절대적인 경전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곧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살아갔고,
이는 마치 등불의 빛을 감출 수 없듯이
그 시대에 큰 반향을 일으켜
결국 박해로 이어지게 했을 것이다.
(서점에 각양각색의 버전의 성경이 넘쳐나는 데도
나를 포함해서 우리 신앙인들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보면
그 당시 순교했던 신앙의 선배들을
볼 낯이 없어진다.ㅠㅠ;)
케냐의 마구간의
붙박이 책장에 꽂혀있는
몇 권 안 되는 책들을 훑어본다.
홍 교리의 서유당이
부러워서 배가 아플 지경이다.^^;
(한국과 미국에 두고 온 내 책들이여~)
그러다 책 한 권이 눈에 꽂힌다.
그러자 갑자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마 이번에는 홍 교리가 배가 아플 것 같다.ㅋ~
나는 매일 그 책과 논다.
그 책의 말을 듣고,
그 책에 하소연하고,
그 책 때문에 울고 웃으면서
나는 그 책이 이끌어 가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중이다.
그러니 케냐의 마구간, M1이야 말로
‘서유당’이 아니던가!ㅎ~
#Feb. 3. 2012.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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