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모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을 읽고.
타고나는 것인 동시에 학습되는 것들 중에 분수가 있다. 자기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인 분수. 사회 구성원들에게 그것은 있어야 하는 것(선천적으로)이고, 알아야 하는 것(학습을 통해)이며, 또한 지켜야 하는 것(사회화되어)이다. 분수가 있고, 분수를 알고 지키는 사람은 사회에서 크게 성공은 못할지언정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으면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가 있다. 사회의 소수 권력자들이 다수에게 분수를 조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작 당자들은 분수도 없이, 분수를 모른 채, 분수마저 어겨가면서 다수를 짓밟고 소수의 자리로 발돋움했으면서.
다행인 동시에 불행히도 내게는 분수가 있었고, 고분고분하게 배워서 알게 된 분수를 꽤 잘 지키면서 생활해왔다. 타고난 분수 감각으로 나는 인간임을 안다. 그리고 나의 인간됨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한다. 그런데 인간인 내가 살아가는 현실은 맘몬이 다스리는 곳이다. 맘몬은 ‘소유’를 기준으로 ‘서민’이라는 분수를 내게 하사했다. 인간됨을 받아들인 내가 서민됨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맘몬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는 한 번도 가난한 서민이었던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마냥 부요한 하나님의 자녀이기만 했다. 맘몬과 함께 ‘소유’를 추구하는 사회에서, 하나님과 함께 ‘경험’을 추구하며 살아온 까닭이다. 결국,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분명한 자기 분수, 자기 바운더리다. “NO!”라는 거절을 통해 건축되기 시작하는.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누가 무언가를 주었을 때 거절한 것은 제 생애에서 그때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서 <인간 실격> 중에서
바운더리 설정을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요조. 타자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내어주기만 했던 그의 여정은 의도치 않게 서로를 속이고, 통제하고, 짓밟고, 이용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수없이 찢겨졌던 까닭에 분열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요조는 선천적 분수 결핍증을 가지고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분수를 배우고 지킬 생각을 처음부터 아예 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결과적으로 요조는 인간이라는 바운더리에서 벗어나서는 스스로에게 ‘인간 실격’이라는 심판과 함께 자살이라는 형벌을 집행하고 만다. 마치 정말 신이나 된 듯.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자상하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처럼 좋은 사람이었어요.” -본서 <인간 실격> 마지막 부분.
민음사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직소>를 한 데 묶어 출판했다. <직소>의 화자는 가룟 유다로, 분수를 모르는 것으로는 그 만한 인물도 없다. 그런 점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퍽 일관성이 있는 작가다.
분수도 모르고 세계 제패를 탐하며 세계 대전을 일으켰던 일본. 분수를 몰라 타자로 하여금 자신을 주관하게 했던 요조. 그리고 분수도 모르고 제 손으로 직접 스승을 팔아 치운 유다. 역시나 극과 극은 통한다. 이와 같이 분수를 모르는 종류의 최후는 자멸이다.
분수를 알고 지키는 자에게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이고 분수이고, 무엇이 한계인지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는 까닭이다. 분수는 지킴의 대상인 반면 한계는 극복의 대상이다. 나는 나의 분수(바운더리) 안에서 나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중이다. 최근에 자신의 ‘소유’를 근거로 나를 가난뱅이로 폄하하는 친구의 본심을 알게 되어 한 차례 몸살을 앓았다. 덕분에 나는 ‘소유 지향적 삶’과 ‘경험 지향적 삶’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가난하지만 부요한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비밀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사용되고 있는 ‘친구’라는 고귀한 호칭에 대해서도 재고해보게 되었다. 이제야 나는 그녀에게 제대로 된 호칭을 붙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도서 7:12-14)
#Jul. 13. 2024.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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