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퍼즐 맞추기
케냐 선교사 시절, 일 년에 한 두 번씩 날라 오는 소포는 위로가 되어주었다. 고추장, 된장, 한국산 과자들이 담긴 박스를 받는 날이면 잔치가 열렸다. 그동안 아껴왔던 한국 제품들을 그 날 만큼은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미국에 있던 한 선교사님으로부터 소포를 받았다. 박스 안에는 여느 소포와는 다른 위문품 하나가 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고흐의 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으로 만든 2000피스 퍼즐이었다. 그녀는 나의 취미들 중 하나가 퍼즐(주로 1000피스 퍼즐) 맞추기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수시로 전기가 끊기는 케냐에서 나는 고무줄에 묶인 라이트를 이마에 고정시킨 채 퍼즐을 맞추기를 즐기곤 했다. 마치 광부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광산에서 금을 캐듯이 나는 진지하고도 열정적으로 나만의 ‘별이 빛나는 밤’을 완성해나갔다.
퍼즐을 잘 맞추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하나는 퍼즐 전체의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각 퍼즐의 고유한 문양과 굴곡이다.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잘 알고 있어야 2000개의 퍼즐들에게 제자리를 찾아줄 수 있고,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의 퍼즐을 완성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에베소서 4:1-3)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당부한다. 그가 말하는 ‘부르심을 받은 일’이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다. 특별히 지키라는 당부를 할 때, 그는 ‘서두르다’, ‘열심을 내다’, ‘온갖 노력을 다하다’라는 뜻을 가진 ‘힘써’라는 현재 분사(σπουδάζοντες, 스푸다존테스)를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이며, 그래서 우선순위로 삼고 최선을 다해야 함을 드러내 준다. 그런데 퍼즐 맞추기를 좋아하는 내게 이 말씀은 마치 흩어져 있는 퍼즐들을 재빨리 맞추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 즉 퍼즐의 전체 그림은 무엇일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교회’다. 그렇다면 각각의 퍼즐들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굴곡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그것을 가리켜 ‘평안’이라고 말한다. 성령께서는 ‘평안의 매는 줄’로 교회를 하나 되게 하셨다. 이 때 ‘평안의 매는 줄’이라는 구(句)에 담긴 소유격은 동격적 내지는 설명적 소유격이다. 즉, ‘평안’과 ‘매는 줄’의 관계는 동등한 동시에 한쪽이 다른 쪽을 설명하는 관계다. 그러므로 ‘평안의 매는 줄’이란 ‘평안, 곧 매는 줄’이라는 뜻이다. 성령은 매는 줄인 평안으로 퍼즐처럼 흩어져 있는 지체들을 꼭 맞게 연결시켜 하나의 교회로 완성해 가시는 것이다.
특별히 ‘평안의 매는 줄’은 전체적 조망에서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각의 퍼즐들, 곧 개개의 지체들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것은 무엇일까? 사도 바울에 의하면 그것은 ‘용납’이다. 각각의 퍼즐들이 자신만의 문양과 굴곡에 따라 서로를 받아들여 꼭 들어맞는 것처럼, 각각의 지체들은 용납을 통해서 서로를 받아들임으로써 꼭 들어맞는 하나가 된다. 용납은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도구상자가 필요하다.
용납의 도구상자에는 크게 두 종류의 연장이 들어 있다. 하나는 겸손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이다. 겸손은 단일 도구이지만, 사랑은 온유와 오래 참음과 함께 세트로 구성 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랑과 온유와 오래 참음은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22)이기 때문이다.
도구상자에는 연장들의 매뉴얼 또한 들어 있다. 먼저, 겸손(ταπεινοφροσύνης)은 자기중심적인 교만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분열을 일으킬 때, 자기를 낮추고 남을 낫게 여김으로써 공동체에 평화를 가져온다. 온유(πραΰτητος)와 사랑(ἀγάπ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공동체가 시끄러워질 때,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게 함으로써 공동체에 평화를 가져온다. 마지막으로 오래 참음(μακροθυμίας)과 사랑(ἀγάπῃ)은 누군가의 약점이나 잘못으로 공동체가 흔들릴 때, 분노하거나 보복하는 대신에 그들의 약점과 잘못을 포용하고 참아내게 함으로써 공동체의 평화를 지켜낸다.
시급하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일, 곧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교회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들이 서로를 치열하게 용납해야 한다. 교회는 스펙에 따라 묶어서 세운 사람의 클럽이 아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평안의 매는 줄로 묶어서 세우신 하나님의 공동체다. 각 성도는 자신을 용납해주셨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서로를 용납함으로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킬 수 있다. 그리스도의 겸손, 그리스도의 온유, 그리스도의 오래 참음,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용납함으로 교회는 하나로 보전될 수 있는 것이다. 하.
#Jun. 8. 2024.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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