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날씨의 음악

창고지기들 2024. 1. 6. 11:16

 

 

 

 

 

이우진의 책, <날씨의 음악>을 읽고.

 

 

인류가 진화해 오는 동안 날씨의 리듬은 우리 몸속에 체화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리듬이 몸의 율동으로 드러날 때에도 지역 특유의 기후라는 프리즘을 거치면서 지역마다 다른 양식으로 다듬어졌을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고장 특유의 음악과 춤을 마주할 때마다 그 안의 투영된 자연의 다채로운 풍미를 느껴보게 된다. -본서 중에서

 

 

건기와 우기로 구성된 계절에서 15년을 살았다. 사계절의 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두 계절의 나라들을 뒤로하고 다시 사계절 권(키이우와 한국)으로 돌아와서 부터였다. 그것은 대체로 즐거운 것인 동시에, 사람을 번거롭게 하는 것이었다. 

 

매일 비슷했던 날씨를 선보이던 두 계절의 나라들에서는 날씨와 관련해서 신경 쓸 것이 별로 없었다. 어제하던 대로 오늘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사계절의 나라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날씨가 매양 바뀌곤 했다. 건강과 일정에 따른 옷차림(TPO)을 위해서는 아침마다 날씨를 체크하는 일이 필수 일과가 되었다. 덕분에 두 계절의 나라들에서 형성되었던 게으름과 느긋함은 편서풍을 타고 사라져버렸다. 대신에 부지런함과 긴장감이 강한 고기압을 형성하는 중이다. 

 

이 책, <날씨의 음악>에는 기상학자가 쓴 일반인을 위한 책답게 기상에 대한 재밌는 정보와 사유들이 어렵지 않게 소개되고 있다. 게다가 대기의 리듬감이 만들어내는 날씨를 선율과 리듬으로 이루어진 클래식 음악과 매칭시켜 이야기해줌으로써 흥미를 더하고 있다.

 

평탄한 날씨가 없다면 험궂은 날씨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폭풍우에 모진 바람과 세찬 비가 몰려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바람이 잦아들고 햇살이 비치면서 삶은 그럭저럭 이어진다. … 평이한 날씨는 교향곡이나 협주곡의 2악장 같은 것이다. 느린 안단테 박자에 맞추어 고요하고 정적인 선율이 흐른다. 그 평온함이 다른 악장의 빠른 템포와 격렬하고 거친 선율에 균형추가 되어 준다. 언제라도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충만함이 회복력을 준다. -본서 중에서

 

<사계> 중 ‘여름’ 1악장은 느린 템포로 더위에 지친 모습을 그려내 시작된다. 2악장에서는 모기와 파리까지 거들먹거리며 귓가에 윙윙댄다. 그러다가 3악장에서는 마침내 폭풍우가 몰려오고 천둥 번개와 우박이 숨 가쁘게 프레스토 템포로 쏟아지며 여름의 대미를 장식한다. -본서 중에서

 

공기가 없다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소리는 빛과 달리 공기라는 매체를 통해서 전파되기 때문이다. … 영화 <그래비티>를 보면 우주정거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주인공이 미아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순간에는 영화음악마저 멈추어, 소리 없는 우리 공간이 더욱 적막하게만 느껴진다. 지구에 대기가 충만해서 자연의 소리는 물론이고 관현악의 화성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본서 중에서

 

 

또한 기상학자답게 저자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자기 언어로 번역하여 잘 들려준다.

 

 

전에는 악장마다 연주 시간이 비슷했지만 최근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그 길이도 달라지는 추세다. 봄을 노래하는 1악장은 짧아지고, 대신 2악장의 여름은 점점 길어진다. 악장을 다시 육등분한 절기는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의 기후와는 맞아떨어졌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조금씩 엇박자를 내고 있다. 기후가 변화한 탓이다. 거기에 날씨까지 춤을 추면서 우리가 체감하는 계절의 시작과 끝도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일 년 전체를 통틀어 보면 자연이 긴장과 이완, 강약을 조절해가면서 한 편의 완전한 교향악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걸 알 수 있다. -본서 중에서

 

도처에서 발생하는 이상 한파는 극지의 얼음이 녹아내리며 발생하는 일종의 발작으로서 온난화를 역설적으로 증언한다. 기온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빠른 속도로 극지의 얼음층이 사라지고 급격한 기후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불운한 전망이 힘을 얻는 이유다. 이런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지구 기온이 처음에는 느린 속도로 상승하다가 임계점에서 갑자기 가속 페달을 밟아 지구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본서 중에서

 

 

가끔씩 머지않아 닥칠 것만 같은 기후의 재앙이 마음 속 스크린에 자동 재생되곤 한다. 기질 상 비관주의에 익숙한 까닭에 그런 것일 테지만, 외면할 수 없는 갖가지 징조들이 신빙성을 더하는 것도 사실이다.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할 때, 문득 물이 부족해서 힘겨워하는 후손들의 눈빛이 떠올라 미안해진다. 건강을 위해 음식을 덜어낼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힘겨워하는 후손들의 모습이 떠올라 더러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세상의 종말은 기후의 재앙으로 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이다. 어쨌든 종말은 오고 말 것(나의 신앙)이고, 그 과정에서 인간은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르고 말 것이다. 그것이 후손에게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

 

 

물이 지나치게 깨끗하면 물고기가 없듯이 대기도 너무 깨끗하면 구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파란 하늘에 조각구름이 뜨고, 때가 되면 비나 눈이 내려서 만물이 성장하고, 비구름이 물러가면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것도 사실 먼지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갖기 싫은 먼지가 대기 중에 떠 있어서 세상이 멋지게 돌아간다는 게 사람 사는 이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개성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느낌 말이다. -본서 중에서 

 

 

한낱 먼지 같은 인생일 뿐이나, 잠시 세상에 머물면서 구름과 비와 무지개와 및 저녁노을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허무하고 아름다운 인생이기를, 키리에 엘레이손!

 

 

 

#Jan. 6. 2024.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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