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의 책,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를 읽고.
문단에서 반복(단어든, 구든, 구절이든)은 의미를 일으킨다. 또한 문맥상의 단절 역시 의미를 발생시킨다. 꾸준한 연속과 돌연한 불연속은 의미가 되어 평안 혹은 불안, 절망과 희망을 일으킨다. 그렇게 삶은 반복과 단절, 연속과 불연속, 확실과 불확실이 어지럽게 교차되면서 끝을 향해 달려간다. 전도서는 이러한 삶을 자세히 관찰하여 얻은 지혜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비록 위에서부터 떨어진 계시는 아니지만, 그것이 말하는 지혜는 ‘made in 하늘’이다. 하늘은 필연적으로 땅과 한 쌍이고, 땅에서 발굴한 모든 지혜의 출처는 하늘이다.
삶에는 질서와 무질서가 동시에 존재한다. 전도서가 포커스하고 있는 삶의 측면은 반복과 연속과 확실이 아니라 단절과 불연속과 불확실이다. 그래서 전도자 코헬렛은 비틀기, 단절, 반전을 문체에 입히고, 그 위에 조소와 냉소와 자조를 덧입힌다. 전도서 읽기가 쉽지 않은 것은 이와 같은 문체와 문맥의 특성인 불연속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 어려움이야 말로 전도서의 핵심 주제와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전도서의 독자는 문장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전도서의 세계와 전도서가 발견한 지혜는 불편하고, 역설적인 것인 까닭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는 전도서 설교집이다. 개인적으로 설교란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의 이야기로, 설교자는 정해진 성경 본문을 주해하고, 그것을 회중의 상황과 상태에 적실하게 번역하여, 회중으로 하여금 말씀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실제 생활을 말씀대로 살아내게 인도하는 것이다. 전도서 전체를 본분으로 설교한 것을 한 데 묶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불연속성을 특징으로 하는 전도서를 매끄럽게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이 책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전도서 작가가 단절, 비틀기, 반전을 문체에 들인 이유는 독자가 자신의 글을 스타카토(staccato)로 끊어서 읽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 자체가 작가의 의도다. 그가 이야기하는 대상인 이 세상에서의 삶이라는 것이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미스테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의 저자는 이와 같은 전도서의 의도를 무시한 채, 스타카토를 레가토(legato)로 부드럽게 연결하여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쓰고 있다. 이와 같은 접근은 특정한 공동체를 위한 현장성 있는 설교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다. 그러나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책이라면, 전도서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기에 아쉬움을 남길 수 밖에 없다.
찢어진 청바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특별한 패션 아이템이다. 그것의 특별함은 찢어짐 자체에 있다. 이 책은 마치 그 찢어짐을 꿰매고 연결하여 평범한 청바지로 만들어 놓은 것과 같다. 입기에, 읽기에 편안하긴 하겠지만, 전도서 특유의 멋과 맛은 휘발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전도서를 종말론적 신학과 절묘하게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매력을 갖는다. 이는 전도서를 레가토로 읽음으로써 얻은 좋은 효과일 테다.
갈수록 전도서나 욥기가 이야기하는 사색적 지혜는 과학을 부둥켜안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사색적 지혜를 좀 더 깊이 이해하려면 현대 과학의 개념과 용어와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 생각에 미치게 된다. 하, 과학이라니! 전도자의 말은 옳다.
한 마디만 더 하마. 나의 아이들아, 조심하여라. 책은 아무리 읽어도 끝이 없고, 공부만 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한다.(전도서 12:12/새번역)
#Oct. 28. 2023.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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