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C. 슬래트의 책, <동쪽 빙하의 부엉이>를 읽고.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부엉이를 구하기 위한 열정과 좌절, 유머와 눈물의 탐사기”
위의 책에 대한 카피는 언뜻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저자의 목적은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부엉이인 물고기잡이부엉이(Blackiston’s Fish Owl)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자연 생태계와 야생동물의 보호와 보전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연해주로 건너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는 물고기잡이부엉이 종의 서식지를 분석하고 종합하여 박사논문을 완성한다.
엊그제 눈이 내렸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해주만 하겠는가! 부엉이 탐사가 연해주를 배경으로 주로 겨울에 이루어지는 탓에, 책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그런 점에서 겨울에 읽기에 더 적합해 보이는 책이다.
따뜻한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감싸듯이 책을 들었다, 내려놓았다를 반복하며 읽었다. 커피를 마시는 일이 때로 단순히 음료가 아니라 추억이나 느낌, 혹은 분위기를 마시는 것이듯 내게 이 책은 단순한 탐사기가 아니라 하나의 은유로 읽혔다. 책을 통해서 나는 나의 영적 서식지, 영적 생태계, 그리고 사역의 시즌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톨랴는 비록 물고기잡이부엉이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숲의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 부엉이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주변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며 일주일은 탐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망스러운 소식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수르마흐의 연구실에서 편안히 앉아 부엉이를 찾는 작업에 대해 얘기를 나룰 때와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추위와 어둠, 침묵을 견뎌야 했다. ... 날이 거의 어두워져서 부엉이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딱 좋은 시간이었지만, 저녁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바람 소리만 들렸다. -본서 중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희귀종 물고기잡이부엉이는 내게는 일종의 내게 주시는 말씀이다. 성경이라는 거대한 세계 안에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발견하고, 만나기 위해서는 실패를 오래 견디며 지속적으로 탐색해야 한다. 귀 기울이기에 딱 좋은 시간을 지켜도, 듣지 못할 때가 태반이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포기하지 않는 은혜가 지속되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들을 수 있는 것이 말씀이다. 그런데 사실 말씀이 희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들을 수 있는 마음 상태가 희귀한 것이다. 마음에는 언제나 심한 바람이 멈출 날이 없으니까.
이번 여행에서 물고기잡이부엉이를 단 한 마리도 못 본 걸 보면 현시점에서는 박사 논문을 작성하려는 내 계획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이 와중에 부엉이 종을 보존할 방법을 수립하자는 제안은 거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톨랴와 슈릭이 보스네세노프카 북쪽 지류를 따라 탐험하다 부엉이가 오래 머문 흔적을 찾았다는 소식을 갖고 돌아오자 나는 다시금 용기를 얻었다. -본서 중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낙담과 불안을 야기한다. 그러나 작은 희소식에 소망은 금세 불타오르고, 우리는 달궈진 소망으로 현실에서 먼 이상에 다리를 놓으며 전진한다.
어떤 갈림길이 고립된 정착지로 이어지고, 또 막다른 골목으로 이어질지 안내하는 표지판은 전혀 없다. 페름스코예에 가게 간판이 없듯이 케마 북쪽 도로는 원래 길을 아는 사람들만 다녔을 것이다. -본서 중에서
=선교지에서 귀국한 지 2년이 넘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나의 영적 서식지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선교지에서 시작되었던 에셀 나무 사역에 대해 느꼈던 한계는 당연한 것이었다. 한계를 부정하기 위해서 숱한 변명들을 찾아내던 일은 어리석었다. 책을 통해 나는 비로소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한 학기만 더 부엉이 탐사를 같이 한 뒤, 우리 모임은 깨어지게 될 것이다.
그나마 물고기잡이부엉이들의 생활을 살짝 엿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몇 년간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덕분이었다. 이제는 어디에 앉아서 기다려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추위 속에서 한 시간을 버텼다. 그리고 영화 속 마시멜로 맨으로 분장하는 것도 감수했다. ... 물고기들의 계절에 따른 움직임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물고기잡이부엉이들이 서식지에서 보이는 움직임과 사실상 일치했다. -본서 중에서
=그간의 묵상 현장 경험이 내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 원고를 쓰고, 숱한 말씀 묵상 모임들을 열고 닫으면서 그것을 주제로 논문도 쓰고 책도 쓰면서 지나왔던 나의 경험은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려는 것일까? 현재 나는 바뀐 영적 서식지와 생태계 속에서 어리둥절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적응하고 말 것이다. 나의 먹이인 말씀을 따라 서서히 나를 조절하고 변화시킴으로써 현재의 서식지에서도 묵상 종족을 번식시키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근근이 혹은 왕성하게.
2010년 현장 탐사 시즌을 맞아 러시아에 도착하기 일주일 전 세레브랸카 강 부엉이 서식지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얼음낚시 낚시꾼을 죽이고 사체의 일부를 먹었다. ... 호랑이의 뇌 조직을 분석한 결과, 사람을 잡아먹는 이 동물은 전염성이 강한 질병인 개홍역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람에 대한 공포심을 잃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본서 중에서
=사람에 대한 공포심은 동물에게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그런 점에서 본능을 망각시키는 개홍역 바이러스라는 재앙이다. 그런데 그것은 동물에게 국한된 전염병은 아닌 듯하다. 인수공통감염병으로써의 개홍역 바이러스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를 신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개홍역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은 하나님을 잡아먹으려 든다. 그러나 그의 결국은 호랑이와 다르지 않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호랑이가 사람의 총에 맞아 죽듯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성경에서 경고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 멸망하고 만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전염병이 난무하는 현대 세속 사회에서 나는 전염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고 있는 걸까? 사회적 거리 두기, 속된 말을 섞지 않기 위해 마스크 쓰기, 청결을 위해 손을 씻듯 회개하기, 그리고 말씀과 기도로 백신 맞기. 매우 유치해 보이는 비유이긴 하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기본 규칙은 유치원에서 대강 배우는 법이다.
처음에는 브로치였다. 부엉이 브로치가 부엉이 목걸이를 구매하게 했고, 다음에는 부엉이 귀고리를 선물 받게 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부엉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이 책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민망하게도 부엉이 자체는 아니다.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 이미지를 즐거워하며 소비하는 것일 뿐이다. 몇 해 전에 방문했던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를 부엉이와 함께 떠올리는 것도 그 때문일 테다.
부엉 부엉새가 부엉 춥다고서 우는 밤들이 지나는 중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물고기잡이부엉이가 부르는 암수 이중창을 실제로 들어본다면 과연 어떤 느낌이 들까?
#Jan. 28. 2023.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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