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심장의 높이 맞추기

창고지기들 2015. 2. 5. 16:50

 

 

 

심장의 높이 맞추기

 


마지막으로 여자까지 떠나자,

요한은 방금 전까지 예수께서 앉아 계셨던 자리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구멍이라도 뚫을 기세로 땅바닥을 열심히 훑어보았다.

‘주께서 분명히 손가락으로 여기에 쓰셨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별 소득이 없었다.

의아해 하던 요한의 얼굴에 문득 미소가 스며들었다.

‘주님은 땅 바닥에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쪼그리고 앉은 것이 아니라,

쪼그려 앉기 위해서 손가락으로 땅에 쓰신 거로구나!

도대체 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가

땅바닥에 내팽겨 쳐진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땅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는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고발자들은 선채로 그녀를 무자비하게 내려다보았다.

굶주린 늑대들에게 둘러싸인 어리석은 양처럼

그녀는 잔뜩 움츠린 채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한복음 8:5)

 


예수께서는 그들의 사나운 질문을 잠시 퍼즈(pause) 하셨다.

아무 대답 없이 그저 여자 곁에 쪼그려 앉으셨던 것이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셨다.

누가 봐도 딴청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가 살짝 고개를 들어 그 분을 보았던 것은 그 때였다.

고발자들의 아우성 속에서도

그 분은 한가롭게 흙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수님과 여자의 심장의 높이가 맞춰지자

예수님의 평화로운 심장 리듬이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미친 듯이 방망이질 치던 여자의 심장은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고발자들의 으르렁거림은 좀처럼 물러설 줄을 몰랐다.

예수께서는 귀찮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서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한복음 8:7)

 


시속 160이 넘는 속도로 말씀을

정확히 스트라이크 존에 꽂으신 후,

예수께서는 다시 쪼그리고 앉아서 아까 하던 흙장난을 마저 하셨다.

주변은 삽시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 후 죄책감으로 입맛을 잃은 늑대들은

하나 둘 먹잇감 곁을 떠났다.

피에 굶주린 자들이 줄행랑을 치기 시작하자,

여자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마침내 예수께서 손을 털고 일어나셨을 때,

주변은 텅 비어있었다.

그 분은 선 채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8:10,11)

 


권위가 있으나 동시에 한없이 자비한 음성이었다.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신음소리 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던 여자는

비로소 목 놓아 울었다.

 


때때로 성난 고발자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현장에서 잘못하여 붙잡힌 자녀들은 주요 먹잇감이다.

나는 원리와 원칙에 따라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한 뒤,

그에 합당한 형벌을 가하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른다.

고발자는 언제든 주변을 무자비한 지옥으로 만들어버릴

만반의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

그래서 지옥이 싫어 애써 고발자를 달래는데도 불구하고,

가끔씩 혹독한 말이 튀어나와 자녀들을 곤욕스럽게 하는 것이다.

 


고발자의 심장은 높은 데 있다.

높은 데서 판단하듯 내려다보기 때문에 심장이 자꾸만 굳어진다.

그러므로 냉정한 고발자가 아니라

따뜻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녀들과 심장의 높이를 맞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몸을 낮추는 동시에

아이처럼 즐겁게 놀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주님처럼 권위 있으면서도 자비로운 훈계를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사랑이라는 세계 안에서

나와 타인의 구분은 없었다.

그러나 원죄가 발생한 다음에는

나 아닌 인간이 더 이상 사랑 안에

우선적으로 포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타인이 생겨났다.

(막스 피카르트의 말)

 


심장의 높이를 맞추는 일은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와

심장의 높이를 맞추신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녀를 사랑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정죄가 아니라 용서를 선포하셨던 것이다.

그 분의 제자로서 나 역시 심장의 높이를 맞추는 일에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자꾸 심장이 굳어지지 않도록,

그래서 사랑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그래서 생명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매일 몸을 낮추고 즐겁게 놀 줄 알기를!

키리에 엘레이손!

 

 

#Feb. 3. 2015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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