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축제의 리허설

창고지기들 2015. 1. 29. 02:58

 

 

 

 

 

 

축제의 리허설

 


“다섯 개 밖에 없어요. 보리떡 말이에요.

두 마리 밖에 없어요. 물고기 말이에요.

요까짓 것 가지고 무얼 해요? 너무 많이 모자라잖아요!

능력 많으신 우리 예수님...”

 

 

찬송을 소리 높여 부르며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함께 즐거워했던 아이들의 눈망울이 문득 그리운 날이다.

주일학교 사역자였던 나는 십 수 년 동안

오병이어(五餠二魚) 본문을 가지고 숱하게 설교했었다.

그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르칠 때면

빠짐없이 등장했던 이야기였고,

나와 아이들은 그것을 통해

그 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곤 했었다.

아직 싱그러운 청춘일 그들이

계속해서 그 분을 더 깊이 믿어가기를

퇴역한 목자는 소망해 본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요한복음 6:4)

 


오병이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요한복음은 그것이 유월절 축제 즈음이었다고 특별히 쓰고 있다.

이는 저자가 이 사건을

유월절 축제의 리허설(rehearsal) 이라는 관점으로 보도록

의도적으로 삽입한 것처럼 보인다.

유월절은 어린양의 피로 죽음이 넘어갔음을,

그래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경축하는 축제다.

그리고 그 축제의 리허설로서의 오병이어 사건은

예수께서 죽음을 끊어버리시고

마침내 새 생명을 세상에 풀어 놓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어린 양이심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축제의 리허설은 실패로 돌아갔다.

저자의 원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독자들에 의해서 리허설이 변질되어버렸던 것이다!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산 넘고 물 건너 꾸역꾸역 예수님을 찾아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의 떡을 위해 계속해서 기적을 행하도록

예수님을 강제로 왕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독자반응이론의 폐해는 심각했다.

그래서 이를 보다 못하신 오병이어의 저자이신 예수께서는

그것의 본래 의도를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요한복음 6:26-27)

 


오병이어 텍스트에서 그들은 떡만 보았다.

독자로서 떡에만 반응했던 이유는 그것이 자기 필요,

자기만족, 자기 유익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병이어 텍스트를 쓰신 이유는

표적(Sign) 때문이었다.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인자임을 보이시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로 자신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그것을 집필하셨던 것이다!

 


내게 유월절 축제의 리허설은 새벽마다 열린다.

그 분이 쓰신 책이 열리고,

그 날의 본문이 식탁 위에 차려지면 축제의 리허설은 시작된다.

허나 왜곡된 독자반응이론의 추종자들 중 하나인 나는

리허설을 종종 망치곤 한다.

떡에만 정신이 팔려

저자이신 그 분이 의도하신 표적을 놓치기 일쑤인 것이다.

가끔 표적을 볼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때조차도 떡을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곤 한다.

그 분만으로 만족할 능력이 내겐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난 늘 허기져있다.

 


다행인 것은 아직은 은혜의 때라는 것이다.

번번이 축제의 리허설이 실패하긴 하지만,

그래도 진짜 축제가 열리기 전까지

아직은 오늘이라는 기회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소망한다.

‘내게’ 주시는 말씀이 없어서

억지로 붙들 말씀을 찾아 헤매는 대신

‘말씀’ 그 자체를 즐거워하는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그렇게 축제의 리허설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기쁨으로 충만한 진짜 축제에 참여하게 될 거라고.

그 때는 말씀을 통해 신랑의 얼굴을 희미하게 뵙는 것이 아니라

휘황한 환희 속에서 그 분의 진짜 얼굴을 뵙게 될 거라고.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 전서 13:12)

 

 

 

 

#Jan. 26. 2015.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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