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천사의 나팔과 물병
계시록의 메인 앵글은
버즈 아이 뷰(Bird's-eye View)다.
계시록의 저자 사도 요한의 카메라가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시록의 세상은
공간감과 입체감을 잃어버린 채
추상적이고도 평면적이다.
개인적으로 계시록 속의 작고 납작한 세상을
오랫동안(계시록을 묵상한지 한 달이 되었다!) 응시하는 일은
몹시 피곤한 노동이다.
무엇보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비록 다양한 악역들(각종 괴물, 재난 등)과
여러 상황들이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전형적인 패턴 안에서
자기 역할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사도 요한은 자신의 이야기를 빤하게 만드는
버즈 아이 뷰 앵글을 메인으로 설정한 것일까?
어쩌면 그는 이 앵글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조형적인 질서를 목적으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책 속의 지루한 반복이 그려내고 있는 질서는 명료하다.
그것은 비록 세상이 몹시 강력하고, 거대하고,
복잡하고, 다층적여 보일지는 몰라도,
결국은 어린양에 의한 심판으로 끝장 날 것이라는
서늘한 질서다.
묵상은 일종의 카메라 워킹이다.
계시록을 묵상하기 위해서는 하늘 꼭대기에 있는 카메라를
최소한 하이 앵글로 끌어내려야 한다.
그러나 동영상 찍기와는 달리
묵상에서의 틸 다운(Tilt Down)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묵상이라는 카메라 워킹에는 거룩한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이라기보다는
그 때, 그 때 위에서부터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암튼, 나는 사도 요한의 카메라를 통해서
하늘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전망들처럼
모든 것이 쫄깃하기만 했다.
그러나 경관이 물쩍지근해지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속되는 고공비행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런 불시착이 일어났다.
급격한 틸 다운 후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물병이었다.
물병이 내 생명의 오브제들 중 하나가 된 것은 당뇨병 때문이다.
물을 자주 마셔야 하는 관계로 나는
수시로 그것을 붙들고 입을 맞추곤 한다.
그러던 어느 새벽,
여느 때처럼 주둥이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병에서 셋째 천사의 나팔 소리가 쏟아졌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요한계시록 8:10-11)
물을 사 먹게 될 것이라는
어느 선생님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지천에 널린 게 깨끗한 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농담은 머지않아 사실로 둔갑했고,
급변하는 문화 안에서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다 문득 말씀 앞에서 아득해졌다.
마실 수 없는 물과 부족한 물의 증가로
물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현실 위로
셋째 천사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던 것이다.
심판이 멀지 않았다는 요란한 경보음으로
나는 잠시 얼음이 되었다.
젖을 빠는 아기처럼 오늘도 나는
병에 입을 대고 물을 빨아들인다.
셋째 나팔 소리가 입을 벌려 요란스레 경고한다.
그 분의 추상같은 심판이 멀리 있지 않다고,
어서 일어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5:15)
#Nov. 22. 2014.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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