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하나님의 아들이 된 여자

창고지기들 2024. 3. 23. 10:22

 

 

 

 

하나님의 아들이 된 여자

 

 

갈수록 어려워지는 일들 중에 선택이 있다. 얼마 전, 드립백 커피를 구입할 목적으로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보았다. 수십 가지의 상품들이 저마다 예쁜 사진과 함께 현란한 자기소개로 간택을 갈구해왔다. 이전 것보다 더 좋은 상품이 있을 거라는 짐작으로 하나하나 꼼꼼히 훑어보다가 나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사지선다형 시험지에 단련된 까닭인지, 선택지가 다섯이 넘어가 버리면 종종 과부하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상품들을 뒤로한 채 이전에 구입했던 상품을 다시 주문했다.

 

우리 시대의 선택 장애는 일반적인 일이다. 산업과 기술의 발달로 선택지가 매우 세분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선택(실패)과 그에 따른 책임을 두려워하는 사회 심리적인 압박이 선택하는 일을 갈수록 어려워지게 한다. 게다가 선택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는 포기하는 것을 뜻하기에, 후회를 낳기 쉽상인 선택 앞에서 대개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어떤 후회 없이, 백 퍼센트의 확신으로 선택을 하는 분이 계시다. 바로 나의 하나님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에베소서 1:3-6)

 

사도 바울에 의하면, 나(우리의 일원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무려 창세 전에 완료되었다. 그것은 나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들겠다는 선택이자,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시키겠다는 선택이었다. 80억 개의 선택지 중에서 나를 선택함에 있어서 그분은 한 치의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었다. 왜냐하면 자기 선택이 옳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행동은 자기 확신에 따른 것이고, 자기 확신은 성품에서 비롯된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이사야 5:16)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은 옳음의 결정체인 까닭에 옳지 않은 일, 옳지 않은 선택을 하려고 해봐야 절대로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옳은 하나님의 선택은 모조리 옳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자신감 덕분에 하나님은 나에 대한 선택을 무려 창세 전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에 있어서 수상한 대목이 하나 있다. 나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해 선택했다는 것은 매우 이해가 되는데, 동시에 아들로 입양하기 위해 선택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나를 아들로 입양하기로 이미 창세 전에 선택하셨다면서, 하나님은 왜 나로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나게 하신 것일까? 

 

혹자는 나의 의문을 초등학생용으로 폄하하면서, 이 때 ‘아들 삼음’이란 ‘자녀 삼음’을 의미하는 통칭이라고 훈계하듯 가르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르바 던(Marva J. Dawn)은 혹자보다 사려 깊다. 그녀는 나의 의문을 존중해주면서 다음과 같은 답을 해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그의 아들들이 되도록 예정하셨다. 페미니스트적인 경향을 지닌 비평가들은 ‘아들’이라는 말을 삭제하고 싶어한다. 헬라어에서 입양한다는 말은 딸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관점에서 아들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날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청년들은 많지만 아들들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청년이 된다는 것은 순간적인 희열로 소리치며 법석을 떤다는 뜻이다. 성경 저자들은 아들이 되는 말을 하나님 아버지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훈련받는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또한 그들은 아들의 권리에는 일정한 책임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들이 된다는 것은 아버지의 대리인이 되어 아버지의 일을 행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의무와 헌신과 책임이 요구된다. 하지만 아들이 되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따라서 여자인 나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이 되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기쁨의 전율을 느낀다. 초대 교회는 당시 사회에서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여자들도 아들의 모든 권리와 책임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Eugene H. Peterson, Marva J. Dawn, 차성구, 『껍데기 목회자는 가라』 (서울: 좋은 씨앗, 2004), 83-84.>

 

 

옳으신 하나님은 창세 전에 나를 자신 있게 선택하셨다. 나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로 입양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시켜, 교회의 머리로 세우신 뒤, 비로소 나를 여성으로 태어나게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그리스도를 믿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 그리고 그 보증으로 성령님을 받았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기에 아들로 입양됨은 내게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며 언제든 그분과 친밀히 교제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내가 하나님의 완전한 소유이듯, 하나님도 오롯이 나의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의무와 책임을 받았다.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성취될 때까지 나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성실히 말씀을 읽고, 쓰고, 증거 하는 중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 묵상을 통해 증거하는 선교사다. 이 사역에 하나님의 아들로 참여하게 된 것은 영광이다. 바리기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답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끝까지 충성하기를, 키리에 엘레이손!

 

 

 

#Mar. 23. 2024.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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