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금수

창고지기들 2024. 3. 1. 09:49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금수>를 읽고.

 

 

금수(錦繡)는 금수(禽獸)가 아니다. 그것은 수를 놓은 비단을 의미한다. 다채로운 색실로 곱게 수를 놓은 비단의 앞면은 아름다움을 맡는다. 반면, 비단의 뒷면은 그렇지 않다. 장인의 솜씨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엉망진창이다. 미야모토 테루의 서간체 소설 <금수>도 마찬가지다. 완성된 작품답게 <금수>는 슬픈 아름다움을 시전 해준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들은 영락없이 수놓은 비단의 뒷면이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일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되었어. 일을 하는 것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지. 난 더, 더 많이 일할 거야.” -본서 중에서

 

 

대타자인 아버지의 지배 아래 살아가던 딸 아키와 사위 야스아키. 어느 날 야스아키의 정부(情婦)가 저지른 동반 자살로부터 야스아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건이 발생한다. 곧 대타자의 뜻을 따라 연애결혼을 했던 그들은 이혼을 하게 되고, 그로부터 10년이 흐른다. 대타자의 의지를 따라 재혼 후 장애를 가진 아들을 낳은 아키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나락의 삶의 살아가고 있던 야스아키. 우연한 기회에 서로 마주친 뒤,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대타자에 의한 분열과 결핍 속에서 소타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띄운다. 그들의 편지를 약탕기에 몽땅 넣고 한소끔 끓여 베보자기에 싸서 짜내면, 한 사발의 주이상스(Jouissance)가 나올 것만 같다. 세월을 따라 아키와 야스아키는 점진적으로 대타자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는데, 특별히 야스아키로부터 대타자(어버지)의 평범한 수컷 됨을 전해들음으로써 아키는 대타자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전기를 맞게 된다(어디까지나 개인적 의견이지만). 

 

절교의 때를 분명히 알고 자기 의지로 작별을 고하는 아키와 야스아키. 그렇게 그들은 대타자의 상징계에서 벗어나 주체로서 각자의 실재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러나 상징계의 대타자(일흔이 넘어선)는 더, 더 많이 일할 거라는 노익장을 여전히 과시한다.

 

 

역시나 타이밍은 중요하다. <금수>를 읽기 직전에 나는 분석자 모드였다. 한동안 심리분석 워크북을 가지고 열심히 씨름을 했던 까닭이다. 문제는 중립 모드로 전환시키기도 전에 성급히 <금수>에 손을 댄 것이었다. <금수>의 중반 정도에 이르렀을 때, 나는 <금수>의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분석하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문학을 심리철학으로 읽게 하는 관성의 법칙이여! ㅋㅋㅋ~

 

 

 

 

#Mar. 1. 2024.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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