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보물창고/선교 편지

전기, 지갑, 그리고 책

창고지기들 2012. 4. 16. 19:24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을

이곳에서 지난 2주간 한번에 경험했습니다.

 

첫번째는 전기가 완전히 단절된 것입니다.

이미 나누었던 경험인데, 전기사용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기회사 직원이 와서 우리가 사는 집의 전기를 완전히 끊어버린 것입니다.

 

두번째는 지난 주에 지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지갑에는 얼마의 케냐 현금이 들어있었고,

그보다 더 필요한 제가 사용하는 모든 ATM카드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지갑이 제 주머니에 없고, 잃어버렸다는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정말 패닉상태였습니다.

 

세번째는 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미국에서 어렵게 구해서 한 달이 넘는 배송기간을 거쳐 받은 책인데,

그만 손에 들고 다니다가 어딘 가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이 세 가지 경험에 대해서,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거나 질문하실 수 있습니다.

 

전기세를 내지 않을 정도로 게으르거나 아니면 가난한가?

소중한 지갑을 흘릴 정도로 부주의하고 조심성이 없는가?

어렵게 구한 책을 잃어버릴 정도로 정신없는 사람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저희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세금과 고지서에 대해서는 연체료를 낸 적이 없고,

전기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어려운 상황은 아닙니다.

저는 지갑에 들어있는 돈의 액수와

카드의 숫자 그리고 위치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지갑의 어느 부분에 흠집이 나있는지도 알고 챙기는 사람입니다.

저에게 책은 마치 우상과 같이  없으면 불안을 느끼고,

필요한 책은 값에 상관없이

구해서 제 지식으로 삼기 위해 노력합니다.

조금 과장하면, 배가 고픈 것은 참지만,

책을 읽지 못하면 머리가 아플 정도입니다.

 

 

이런 제게 저도 예측하지 못한

세 가지 단절/분실의 경험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단절과 분실이 찾아왔을 때,

저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빨리 지금까지 낸 영수증을 찾아서,

가서 책임을 묻고, 전기를 복원시키자.

아무리 그래도 나의 잘못이 아니니, 이들이 해결해주겠지."

 

"이제 손에 쥔 돈도 없고, 카드도 없으니, 빨리 분실신고하고,

아는 사람을 찾아서, 돈을 빌린 다음, 얼마간 버티고,

곧 후원교회에 요청해서, Money Gram을 통해서 돈을 받아야겠다."

 

"책...정말 소중한 책이고, 정말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다른 방도로 그 책을 구해서 다시 읽도록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정말 믿기 어려운 일들이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전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다시 밝은 빛을 비출수 있도록, 연결되었습니다.

 

지갑의 경우는 더욱 기적과 같이,

그날 예배했던 교회의 관리인이 주워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은 가볼만한 곳을 다가본 후 포기했을 때,

제가 전화번호를 남겨둔 곳에서 찾았으니 와서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제 저의 질문은

"이러한 단절과 분실의 경험과 그 회복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입니다.

전기도, 돈도, 책도 제가 살아가는데 모두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것이 완전히 제게서 단절되고 떠났지만 다시 모두 회복되고 찾았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모든 일에 대한 온전한 가능성을 삶에서 체험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죽음이라는 완전한 상실에서 생명을 가능하게 하시는 주님)을

세 가지 경험을 통해 분명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의 자리에서 저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신 듯 합니다.

 

"선교는 가능한 일, 눈에 보이는 일들을 기능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해보이는 일과 현실에서 하나님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안정된 여건에서 즐기고 누리면서 하기보다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확신하고 참여하라."

 

 

제게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참여한다는 고백이 있었지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간절한 기대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안정된 곳에서 큰 희생없이,

그저 열심히 하면 되는 그런 일을 지향했습니다.

바로 이곳 선교의 현장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 제게 하나님은 좀더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에서

일하실 것을 확증해보이고 계십니다.

제가 지금 있는 곳이 여러 면에서 불가능해보이는 여건에 처해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곳에서 반드시 일하신다는 하나님의 굳은 의지가

제게 보여집니다.

 

전기, 지갑, 그리고 책을 제게 다시 회복시켜주신 것처럼,

이곳에서 도무지 어려워 보일 그 일들을 하시겠다는 의지를 굳히고 계십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제가 조금더 경험하면서 고백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어진 불가능의 현실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깊은 의도를 헤아리는데 시간이 걸린 저의 우둔함을 고백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일의 진행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입니다.

저는 그래서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의 가능성에 최선을 다해 의지하고

제 몫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2012년 4월 16일 주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