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

창고지기들 2022. 5. 21. 11:07

 

 

 

 

 

 

로버트 뱅크스의 책, <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를 읽고.

 


선교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쯤은 대부분이 알고 있는 바다.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창조와 완성(구원)의 사역이 선교다. 

특별히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낳은

믿음의 자녀들과 함께 선교를 이루어 가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 삶, 

곧 자신의 전존재와 모든 활동으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한다.

 


다음 며칠 동안 유니아(아내)와 나는 이 일에 대해 상의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제안을 따라야겠다고 느꼈다. 이러한 가능성을 통해 나는 하나님께서 로마 이외의 지역에서 내 비즈니스를 통해 하나님 자신의 비즈니스를 확장하시기 위하여 어떻게 나를 사용하시는지에 대해 눈이 뜨였다. -본서 중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선교’ 역시 

하나님의 일로써의 선교다. 

전도 책자를 들고서 복음의 내용을 전한 후 

영접 기도를 시키는 평면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전 존재와 전 활동을 포괄하고 아우르면서 

창조와 구원을 일으키는 입체적 역사다.


저자는 이와 같은 선교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1인칭 주인공 푸블리우스를 창조한다. 

그는 1세기 로마에서 은행업을 하는 그리스도인이다. 

저자는 화자가 자기 직업을 통해 

어떻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확장시켜 나가는지를 

퍽 심플하게 보여준다.


요약하자면, 푸블리우스는 하나님의 비즈니스(선교)를 위해 

자신의 비즈니스(은행업과 정계 진출)를 서서히 발전시켜 나간다. 

즉, 하나님의 선교적 관점에서 자신의 비즈니스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되, 

교회 공동체의 기도와 지원을 통해 신중하면서도 

창의적이고 지혜롭게 삶의 도전들에 대응한다.

 


“경건함에 이르도록 몸을 훈련하십시오. 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내게도 중요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가장 일상적인 것들을 통해 자신의 도를 알려주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 하나님께서는 모든 삶 속에서 현존하시며 삶의 어떤 것을 통해서도 나를 지도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나는 새로운 영역으로 처음 들어서면서 자신감이 생긴다. 그럴 때 나는 그분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분과 함께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본서 중에서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을 위해서(선교)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함께하는(예배) 일상을 살아가는 자다. 

인격적인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서 

선교와 예배와 일상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치 3도 화음처럼, 

하나의 화성(和聲)인 동시에 

3개의 서로 다른 음들이 선교와 예배와 일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가 일상이 될 때, 

하나님과 함께 하는 매일은 

이미 하나님의 선교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여 식사함으로써 이러한 그릇된 인상이 재빨리 깨지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그러한 시각을 대화 주제로 삼았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아무 격식 없이 편하게 그들을 대하고, 그들의 배경과 삶의 여정에 관심을 보이면서 그들과 함께 혹은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게 더 중요했다. … 우리 자신에 대해 자랑하기보다는 손님들에게 더 관심을 보이고, 서로를 동등하게 대하면서 서로의 세계에 관심을 보이고, 서로 존중하고 친절히 대하려고 한다. -본서 중에서


유대교에서 나온 이단적 섹트쯤으로 치부되던 것이 1세기의 기독교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를 위해서 길거리로 뛰쳐나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신에 식사 초대와 같은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 형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복음을 증거했을 테다.

 

믿지 않는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는 불편하다. 

그래서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나,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유기할 수도 없다. 

혈육이란 그토록 질긴 괴력을 가진 종류인 게다. 

그런 중에 1세기 그리스도인에게서 지혜를 얻었다. 

불신하는 가족들과의 식사를 

마냥 불편한 것쯤으로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 선교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식사 자리에서 그들의 세계에 관심을 보이고, 

그들을 존중하면서 친절히 대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기회로 삼는 것은 

분명히 내 편에서 울며 씨를 뿌리는 선교의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아리스도불로와 내가 하는 일이 체제 전복을 도모하는 일로 오해받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특히 네로의 충견들에 의해서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 결과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수님 자신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바라건대, 부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만일 바울과 베드로가 로마에 도착한다면, 그들 역시 위험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두고 그 결과를 그분께 맡기는 것뿐이다. 

-본서 중에서


푸블리우스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로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점점 더 의식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로써,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말씀이 

삶의 전방위에 스며들어 관여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다가 열강들과 유대의 타락과 불신앙을 한탄했던 

선지자들의 심정을 설핏 헤아릴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사야의 탄식과 열망, 예레미야의 눈물, 

하박국의 거룩한 공포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아마도 이와 같은 소량의 인격적인 앎은 마중물이 되어 

점점 더 많은 앎을 퍼 올릴 것이다. 

썩 불편하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벌어졌으니, 

결국 기어이 성취되고 말 일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는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자세와 

믿음으로 그분의 처분을 기다리고 수용하는 태도를 갖게 될 테다.

 

 

본서의 마지막 문장인 동시에 역자 후기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예배와 일상과 선교는 나뉘지 않는 하나의 전체다!”

 

제법 결연한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는 마지막 외침을 듣고 있자하니, 

우리 집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문득 웃음이 났다. 

우리 집에는 예배학자 남편과 

일상을 성경과 엮어내는 묵상가 아내가 함께 살고 있다. 

심지어 예배학자요 묵상가인 그들은 

케냐와 우크라이나의 선교사이기도 하다.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라는 창조주의 지엄하신 명령을 따라, 

나뉘지 않는 하나의 실체로써의 예배와 일상과 선교가 

현재 우리 집에서 살아 숨 쉬고들 있는 것이다. ㅋ

 

 


첨언:
가난하나 부요하게 살고 있는 내 삶의 역설은 

이미 1세기 때부터 설명되었던 바다. 

이 책을 통해 발견한 1세기 철학자들의 주옥같은 말은 다음과 같다.

 

세네카 왈, 

“가난한 사람이란 너무 조금 갈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 많이 갈망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에픽테투스 왈, 

“부란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적게 원하는 데 있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부요하게 살 수 있는 비법은 간단하다.

조금 갈망하고 적게 원하는 것이다. 

물론, 내게도 부쩍 가난해질 때가 없지 않다. 

방심하는 사이에 갈망과 원함이 뚱뚱해졌던 탓이다. 

하지만 갈망과 원함은 다이어트로 관리가 가능한 종류다. 

세상 모든 다이어트가 그렇듯 

성공하기 쉽지 않은 것이 문제긴 하지만. 


다행한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는 살짝 수월하다는 점이다. 

내주(內住)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갈망과 원함을 줄이는 대신 자족(自足)은 늘릴 수 있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떵떵거리며 부요하게 사는 자들의 탄생은 오로지 성령님에 의해다. 

많은 소유를 통해 부자가 되길 갈망하는 이들에게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부요하게 사는 그리스도인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교의 도구가 될 수도 있겠다. 

키리에 엘레이손!

 

 

 

 

 

#May. 21. 2022.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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