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일단 깊은 데로

창고지기들 2022. 1. 22. 10:53

 

 

 

 

 

일단 깊은 데로

 


다시 시작이다. 

거듭하여 출발선 앞에 서있으려니 여러 감정들이 서로 다툰다. 

그중에서도 지겨움이라는 녀석이 군계일학이다. 

시작이 자꾸 되풀이 된다는 녀석의 푸념이 제법 큰 소리로 들려온다. 

웬일인지 속절없이 행복해진다.


끝이 없는 시작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 되풀이 되는 시작이란 여전히 과정 중에 있다는 뜻이다. 

과정 중에는 기회가 숨겨져 있고 기회는 은혜의 또 다른 이름이니,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신랑과 같은 은혜가 함께 있으니, 

아직은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면서 혼인 잔치를 즐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할 묵상 모임에서 

지속적으로 나누어야 할 이야기를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십 수 년 동안 나누고 또 나누어 왔던 묵상들을 떠올려 본다. 

아직 나누지 않은 성경 본문들과 

개인적인 삶의 본문들이 과연 남아있을까? 

질문 앞에서 막막해진다.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었던 

시몬 베드로(누가복음 5:5)와 같이 갑갑해진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누가복음 5:3)


하고 많은 배들 중에서 

굳이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올라 무리를 가르치셨던 예수님. 

청하셨으니 그저 잠시 배를 빌려드리면 되는 퍽 간단한 일이지만, 

밤새 한 헛수고로 인하여 좌절한 마음이 

그분의 청을 승낙하기 쉬웠을 리 없다. 

매우 애를 써야 겨우 내어드릴 수 있었을 테다.


헛수고로 말하면, 

개인적으로 끔찍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일가견이 있는 일이기도 하다. 

매일의 묵상은 일용할 양식을 위한 고기잡이와 다르지 않다. 

고기잡이는 보장이나 보험이 적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물을 내릴 때마다 물고기가 잡힌다는 보장이 없으니, 

헛수고는 필히 각오해야 한다. 

때때로 헛수고가 오래도록 지속될 때가 있기에 

배고픔을 견디는 일에도 익숙해져 한다. 

좌절감을 등에 업고 거듭 그물을 내리는 수고, 

그것은 묵상하는 자들의 숙명이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누가복음 5:4)


이윽고 가르침을 마치셨을 때, 주님이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 

헛수고처럼 보이는 일을 시몬에게 명령하셨던 것이다. 

주님은 시몬에게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다. 

고기 잡기에 적실한 때는 밤이다. 

그런데도 주님은 밤새 헛수고를 하느라 지친데다 

애를 써가며 자기 배를 내어드렸던 시몬에게 고기 잡기를 명령하셨다. 

이상한 쪽은 시몬도 마찬가지다. 

흔쾌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주님의 가르침에 감정적으로 꽤나 고양이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말씀에 따라 시몬은 깊은 데로 배를 저어갔고, 

그물을 아무 깊은 데에 내렸다. 

그러자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짖어지는지라’(누가복음 5:6)가 발생했다. 

시몬은 부랴부랴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을 하여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야고보와 요한의 배가 당도했다. 

고기는 두 배를 물에 잠기게 할 만큼 그득 채운다.


거듭 묵상해왔던 누가복음 5장 속에서 나는 지친 시몬 베드로다. 

밤새 한 헛수고로 아침부터 피곤하기 일쑤인 내가 하는 일은 

고작해야 주께 내 배를 잠시 내어드리는 것뿐이다. 

습관을 따라 새벽마다 말씀으로 나를 가르치게 할 뿐이다. 

그 와중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명령이 마침내 떨어졌다. 


게네사렛 호수는 내가 전문이다. 

안 가본 곳 없이 다 누비며 고기를 잡았던 곳이다. 

그런데 무작정 깊은 데로 가라는 주님이시다. 

대체 정확히 어떤 깊은 데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난감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게네사렛 호수는 그분이 창조한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일단, 말씀대로 배를 저어 깊은 데로 나아가보자.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그물을 내려 보자.

 


어쨌든 2022년 올 한해도 

그물이 찢어질 듯 심히 많은 물고기가 잡힐 것만 같다. 

지금까지 나눠왔던 이야기보다 

훨씬 더 풍성한 이야기로 모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그리 되는 이유는 아마도 동료들 때문일 테다. 

잡은 물고기를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나누어 실어야 하는 까닭인 것이다.


잡은 고기들을 가득 나눠 가진 우리들이 

주님의 능력과 은혜에 놀라고 감격하며 찬양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손에 손을 맞잡고 다함께 

그분을 더욱 친밀히 뒤따르게(누가복음 5:11) 되는 상상을. 

키리에 엘레이손!

 

 

 

 

#Jan. 22. 2022.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