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이신(交友以信)
디모데는 마음씨 좋은 친구다.
늘 친절할뿐더러 양보를 밥 먹듯 한다.
이를 테면, 그가 대부(代父)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을 때면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밀어 그의 편지를 훔쳐보곤 하는데,
지금까지 싫은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싫은 내색은커녕 오히려 자신은 나중에 천천히 읽을 테니
먼저 읽으라며 편지를 내 손에 쥐어주곤 한다.
덕분에 어느새 그의 대부는 나의 대부도 되었다.
아비를 잃어버린 내게 대부가 생기다니, 굉장한 일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디모데후서1:8)
우리들의 대부는 바울이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할 말이 많은 어르신이나,
지금으로선 복음과 고난을 세트로 전파하는 선교사 정도로 소개하고 싶다.
어쩌다 보니, 복음과 축복을 세트로 전파하는 이들이 심심찮아져서 말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복음 자체가 축복이다.
그리고 축복인 복음은 언제나 고난과 함께 전파된다.
즉, 복음이라는 반짝이는 축복은
예외 없이 고난이라는 그림자와 한 묶음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고난을 발라낸 축복 일색의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거짓 선생이다.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디모데후서2:22)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5)
최근에 대부는 내게 친구를 가려 사귀라고 충고하셨다.
정(淨)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자들,
곧 거룩한 자들과 친구가 되어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는 우정을 쌓되,
부정(不淨)한 마음 곧 악한 욕망을 따라 살면서도
경건한 척하는 자들은 되도록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반백년을 살아온 내게
친구를 가려 사귀라는 조언은 꽤나 참신하게 들렸다.
주변에 남아 있는 친구가 별로 없는 게 나의 현실이니 말이다.
그렇게 없는 중에도 정한 부류와 부정한 부류를
철저히 구별하여 사귀라니, 역시나 복음의 친구는 고난이다.
물론, 내게는 정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복음과 함께 기꺼이 고난을 받는 이들이다.
그들과 함께 청년의 정욕이 아닌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는 일이 쉬울 수는 없다.
오히려 힘겹고 고통스러울 때가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여 지속적으로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대체로 재밌기 때문이다.
복음을 따르는 일이 놀이처럼 재미있다는 사실은
맛보아 아는 사람만 안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디모데후서3:7)
부정한 마음으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도 물론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신으로 사랑하는 동시에 이웃을 혐오한다.
그들은 망령되고 헛된 말, godless chatter를 일삼으면서도,
수많은 성경 구절과 함께 신학적이고 경건한 어휘들을 문장마다 덧붙인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경건해 보이는 그들이지만,
사실은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기에 항상 배우는 것 같아도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해 허덕거린다.
그리고 허덕임을 감추기 위해 더욱 두껍게 경건의 메이크업을 하나,
그들 자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메이크업을 지우고 나면,
자신의 맨 얼굴이 청년의 정욕을 따르는 자의 얼굴과 같다는 것을.
교우이신(交友以信)이라는 말이 있다.
신라 시대 화랑들이 지켰던 세속오계(世俗五戒) 중 하나로,
벗을 사귐에 있어서는 믿음으로 한다는 뜻이다.
오늘 내게 이 말은 사귐을 위해 벗을 믿어야 한다는 뜻 이상으로 다가온다.
주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친구를 가려 사귀어야 한다는 것으로 읽히는 것이다.
대부의 충고를 따라 정한 마음,
곧 거룩한 믿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과 친밀히 사귀기로 한다.
거룩한 척 하는 자들을 분별하여 사귀는 대신에
거리를 두되 기도로 돕기로 한다.
그렇게 사귐의 대상과 사역의 대상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제게 허락하소서!
키리에 엘레이손!
#Jan. 15. 2022. 사진&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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