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련하신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안타깝게도 나는 욥이 아니다.
더 그레이티스트 맨(the greatest man)이 아니다.
나는 그저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중 하나일 뿐이다.
한껏 예사로운 사람은 위대한 사람 앞에서 기가 죽는다.
특별히 하나님마저 인정했던,
그 위대한 사람 욥의 대담하다 못해 당돌하기까지 한 선언을 들을 때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10/개역개정)
하나님은 내가 발 한 번 옮기는 것을 다 알고 계실 터이니,
나를 시험해 보시면 내게 흠이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으련만!
(욥기 23:10/새번역)
그런데도 그는 나의 걸음을 낱낱이 아시나니,
털고 또 털어도 나는 순금처럼 깨끗하리라
(욥기 23:10/공동번역)
욥은 주장한다.
불순물 하나 없는 순금처럼 결백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대차게 주장한다.
주장의 근거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이미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알고 계신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미처 파악하지 못한 죄가 있을 지도 모르니,
욥은 자진하여 주께 수사를 의뢰한다.
철저한 수사를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압수수색하라고 요청한다.
그럴지라도 자신은 완전무결하다고 피력한다.
이와 같은 욥의 선언은 어쩐 일인지
‘그래, 너 잘났다~’와 같은 비아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고결한 피는 따로 존재하는가?’와 같은 회의감을 느끼게 한다.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간간이 평범 이하이기도 한 범인(凡人)들과 함께
도토리 키나 재며 살아가는 나다.
욥과 같은 위대한 종류를 일생 단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다.
매우 있음직해 보이기는 한데 대면해본 일이 없었기에,
지속적으로 책에 손을 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책속에는 고결한 종류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하니까.
개인적으로 욥의 말을 차용하여 선언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리라
지독하게 단련되던 때가 내게도 있다.
이방 땅에 거류하며 외국인으로 살던 이십년의 세월이 있다.
그 시절 내내 나는 시민권 없는 가난한 변두리 주변인으로 숨죽이면서 살았다.
게다가 물, 전기, 치안, 먹거리, 관계 맺기 등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생존 조건들마저 박탈되자,
비로소 애써 감추고 있었던 나란 인간의 실체가 여실히 탄로 났다.
그 동안 꾸준히 확신해왔던 ‘상당히 괜찮고 매력적이며
심지어 올바른 종류’라던 자기평가가
그분의 단련 속에서 착각으로 밝혀진 것이다.
결국, 나의 실체는 상당히 우려스럽고, 흉물스러우며,
스스로를 과신(過信)하여 남을 함부로 비방하는 옳지 못한 종류였다.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데,
뭐라도 되는 줄 아는 자기기만에 흠뻑 빠져있었던 것이다.
주님께서 단련하신 후에 나는 순금은커녕
14K나 10K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았다.
그것이 너무 아파서 오래 앓으며 방황했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것이 또한 나를 자유롭게 했다는 것이다.
진리가 나로 자기기만이라는 무거운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신 것이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만나온 지인들 중에는 만날 때마다
답답함을 유발시키는 기발한 능력을 가지 자들이 있다.
‘나는 항상 옳고, 나를 힘들게 하는 그들은 늘 틀리다’는
불변의 법칙을 고수하는 꽉 막힘과 고지식함의 대명사.
자신의 진짜 모습을 깨닫기 위해서
그들에게도 그분의 단련이 절실히 필요할 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단련을 그들에게도 허락하옵소서’ 라고 감히 간구하지 못하는 나다.
그것이 몹시 공포스럽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부끄럽게도
그런 간구를 할 만큼 그들을 깊이 사랑하지 않아서다.
‘그러하오니 주여,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우리 모두를 긍휼히만 여겨주시옵소서!’
#Dec. 18. 2021. 사진&글 by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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