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poeM

가을나기

창고지기들 2020. 6. 6. 16:16

 

 

 

 

 

 

가을나기

 



운동장 
만 할 때도 있었어요.
흠씬 누벼도 곤핍한 
법이 없고,
넘어져도 금세 털고 일어나면 
그뿐인 때가.
그러다 벌써 외줄타기 
중이라네요.
새끼손톱만큼 만 긴장을 
늦춰도
금이 간 균형은 물 새듯 
낙하하고
깨진 몸이 몇 날 
며칠을 앓아야 하는 것은
꼼짝없는 일에요.



고장 
난 보일러가 
호령하는 낡은 집에서 살아야만 
하는 당위는
아파서가 아니라 괴로워서 근면한 
수난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덜컹거리는 굉음은 
맥락도 
없는 발열을 쏘아 올렸다가 한순간 
서리 
같은 식은땀으로 추락해 버리곤 해요.
급살이라도 
맞은 듯 쉬이 무너져가는 집은 낡는 
법이 
없는 몸살로 무럭무럭 폐허가 
되어갑니다. 

 


높다라니 
파랗게 하늘은
아름다운 날들을 끼니처럼 
지어내는데 
정녕 
그것을 기뻐하지 못함은
가을의 의무보다 
여름의 권리에 대한 
어리석은 
미련이 사무쳐서일 
테죠.



한 잎 두 잎 떨어지던 때
덜컥 
지나가버려 자고 일어나면
수북이 쌓여있는 잎의 
주검들.
자연스레 
떨구지 못하고 강제로 뜯기기만 
하는 
고단한 계절 
따뜻해본 적 없는 양
냉정하게 
차가운 바람으로 꼬깃꼬깃 
옷깃을 여미어 
봅니다.

 





#Jun. 5. 2020. 사진 & 시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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