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의 책, <느낌의 공동체>를 읽고.
카탈로그 보는 것을 좋아한다.
멋진 사진과 함께 단순 명료한 설명이 곁들여진
상품 목록들을 훑어보고 있자면 뜬금없이
설렘(누군가는 구매 욕구라고 하겠지만)이 끼어들기도 한다.
소비주의 그물망에 걸려 있는 자의 가벼운 통증 같은 것일 테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느낌의 공동체>를 읽는 일은 수월했다.
비록 사진은 없었지만,
문학, 그중에서도 특별히 시(詩) 분야의 카탈로그로서
책은 손색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구매하고 싶은 시집을
장바구니에 수두룩 쌓아 놓은 것은 물론이다.
시적인 산문을 지향하고 있는 작가의 책답게
책의 문장들은 퍽 곱고 아름다웠다.
게다가 어떤 것들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해서
덜컥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시집들에 대한
구매 욕구를 부채질 당했을 테다.
확실히, 작가는 적당한 거리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장착한 것이 분명하다.
시인과의 거리 두기든, 시집과의 거리두기든,
그 밖의 문학이나 미학과의 거리두기든 암튼,
일체의 상품(?!)이 가장 멋지게 보이는 거리를
정확하게 포착하여 소개하는 일에
작가는 실력 있는 쇼호스트다.
그렇다고 모든 게 완벽했다는 말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책 말미에 실린
시인에 대한 보다 기다란 시평은 퍽 지루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이전에 출판되었다던
작가의 평론집이 아니라,
<느낌의 공동체>를 먼저 읽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모국의 시와 서먹한 사이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20년 가까운 해외 생활로
고국과의 물리적·정서적 거리가 벌어진 까닭도 있겠고,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자에게 시란 흔히
사치품으로 분류되는 탓이기도 하겠다.
책장에 꽂혀있는 시집이라곤 이성복 시인과 박준 시인,
그리고 횔덜린 것이 고작이다.
그래서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마치 문학회 선배 같이
이제 막 동아리에 들어온 새내기 같은 내게
모국어 시들을 권해주었으니까.
존경하는 마음으로 나는 선배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그를 통해 다시 시집을 펴서 읽고 싶은 욕망을 수혈 받았다.
더불어 소설 몇 권과 대중음악 몇 편까지.
그러므로 작가는 대략 성공이다.
부지런히 노를 젓 듯이 쓴 글로
마침내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한 독자에게 당도하고 말았으니.
독자를 설득시킨 작가는 유능한 법이다.
어깨에 잔뜩 힘을 주며 거들먹거린다고 해도
한 동안 나는 선배를 존중하면서도
귀여워할 것이다.ㅎ~
#Apr. 9. 2020.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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