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arT

오르막 길

창고지기들 2014. 2. 8. 15:51

 

 

 

 

 

#1.

 

 

“사랑이

그대를 부르거든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힘들고 가파를지라도.”

 

 

이는 수년 째

나의 미니홈피 대문에 걸려있는

칼릴 지브란의 글(예언자)이다.

무슨 심산으로

처음 이 글을 걸어놓았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글은

시나브로 내 삶에 젖어들며

제목답게 내 삶의 궤적을

예언해주고 있다.

 

 

 

 

#2.

 

 

사랑이신 그 분이 불러

그 길을 따라갔던 케냐에서의 2년은

모질게 힘들고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물론, 그 길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했었다.

그러나 난생 처음 경험했던

풍토병과 테러와 비자 문제는

가늠했던 것보다 훨씬 가팔랐다.

그 중에서도 비자 문제는

2년 동안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그 길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끝내 불법체류자가 되었을 때는!)

 

 

소망이 체념으로 변질되어 갈 때,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내게

그 분은 작은 선물을 하나 주셨다.

그것은 윤종신님이 만들고

정인님이 불렀던 노래

‘오르막 길’이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한 걸음

이제 한 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견디겠어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3.

 

 

정인님의 입체적이면서

드라마가 있는 목소리로

연주되는 ‘오르막 길’은

다양한 결로 해석될 수 있는

단단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노래 속에서 나는 ‘우리’가 되었는데,

노래가 진행되는 중간 중간에

나는 ‘우리’ 중에서 화자가 되었다가

갑자기 청자로 변신되는 청량함을 맛보며,

오르막 길 한 구석에서

잠시 숨을 고르곤 했다.

 

 

그러던 지난 월요일,

2년 1개월 만에 드디어 비자가 나왔다.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으로

겨우 버티던 상황 속에

느닷없이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자 나는

노래 속 화자의 말처럼

아득한 저 끝을 등지고 잠시 앉아서

올라온 만큼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높이 올라왔다니!’

 

 

갑자기 뿌듯함이 밀려오자

바람이 더 없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 분이

저만치 작은 바오밥 나무 그늘에 앉아계셨다.

나는 그 분 곁에 앉으며 말했다.

 

 

“그 동안 비자 문제로

제가 얼마나 숨을 헐떡거렸는지 아시죠?

하지만 드디어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게 되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요.

결국 이렇게 주실 거면서

왜 진작 주시지 않고

그토록 오래 기다리게 하셨나요?”

 

 

지나온 길목마다 남몰래 흘렸던

땀과 눈물이 생각나자 울컥한 마음이 들어

나는 나도 모르게 따지듯 그 분께 물었다.

그 분은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대답하셨다.

 

 

“비자와 관련해서 넌

내게 레스큐어(Rescuer)가 되어 달라고 요구했지.

하지만 비자와 관련해서 내가 원했던 건

너의 친구가 되는 것이었단다.

케냐에 대한 우정을 나누면서

케냐로부터 받는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친구 말이다.”

 

 

 

 

#4.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한 걸음

이제 한 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견디겠어”

 

 

바람을 향유하는 것은

잠시간의 일일뿐이니,

이제는 다시 올라온 만큼의 길을 등지고

저 높은 끝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심히 아득하여 잘 보이지 않는

이 오르막길의 끝을 향하여

다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이 길을 오르는 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다.

나를 종이 아니라

친구라 부르시는 그 분과 함께

나는 이 길을 오른다.

아직은 친구라는 호칭이

부담스럽고 마뜩치 않아

더러 볼멘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Feb. 7. 2014.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