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이
그대를 부르거든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힘들고 가파를지라도.”
이는 수년 째
나의 미니홈피 대문에 걸려있는
칼릴 지브란의 글(예언자)이다.
무슨 심산으로
처음 이 글을 걸어놓았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글은
시나브로 내 삶에 젖어들며
제목답게 내 삶의 궤적을
예언해주고 있다.
#2.
사랑이신 그 분이 불러
그 길을 따라갔던 케냐에서의 2년은
모질게 힘들고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물론, 그 길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했었다.
그러나 난생 처음 경험했던
풍토병과 테러와 비자 문제는
가늠했던 것보다 훨씬 가팔랐다.
그 중에서도 비자 문제는
2년 동안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그 길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끝내 불법체류자가 되었을 때는!)
소망이 체념으로 변질되어 갈 때,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내게
그 분은 작은 선물을 하나 주셨다.
그것은 윤종신님이 만들고
정인님이 불렀던 노래
‘오르막 길’이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한 걸음
이제 한 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견디겠어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3.
정인님의 입체적이면서
드라마가 있는 목소리로
연주되는 ‘오르막 길’은
다양한 결로 해석될 수 있는
단단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노래 속에서 나는 ‘우리’가 되었는데,
노래가 진행되는 중간 중간에
나는 ‘우리’ 중에서 화자가 되었다가
갑자기 청자로 변신되는 청량함을 맛보며,
오르막 길 한 구석에서
잠시 숨을 고르곤 했다.
그러던 지난 월요일,
2년 1개월 만에 드디어 비자가 나왔다.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으로
겨우 버티던 상황 속에
느닷없이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자 나는
노래 속 화자의 말처럼
아득한 저 끝을 등지고 잠시 앉아서
올라온 만큼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높이 올라왔다니!’
갑자기 뿌듯함이 밀려오자
바람이 더 없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 분이
저만치 작은 바오밥 나무 그늘에 앉아계셨다.
나는 그 분 곁에 앉으며 말했다.
“그 동안 비자 문제로
제가 얼마나 숨을 헐떡거렸는지 아시죠?
하지만 드디어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게 되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요.
결국 이렇게 주실 거면서
왜 진작 주시지 않고
그토록 오래 기다리게 하셨나요?”
지나온 길목마다 남몰래 흘렸던
땀과 눈물이 생각나자 울컥한 마음이 들어
나는 나도 모르게 따지듯 그 분께 물었다.
그 분은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대답하셨다.
“비자와 관련해서 넌
내게 레스큐어(Rescuer)가 되어 달라고 요구했지.
하지만 비자와 관련해서 내가 원했던 건
너의 친구가 되는 것이었단다.
케냐에 대한 우정을 나누면서
케냐로부터 받는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친구 말이다.”
#4.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한 걸음
이제 한 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견디겠어”
바람을 향유하는 것은
잠시간의 일일뿐이니,
이제는 다시 올라온 만큼의 길을 등지고
저 높은 끝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심히 아득하여 잘 보이지 않는
이 오르막길의 끝을 향하여
다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이 길을 오르는 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다.
나를 종이 아니라
친구라 부르시는 그 분과 함께
나는 이 길을 오른다.
아직은 친구라는 호칭이
부담스럽고 마뜩치 않아
더러 볼멘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Feb. 7. 2014.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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