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arT

April Love

창고지기들 2013. 4. 15. 19:32

 

 

 

 

"아, 사월(四月)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알뿌리(球根)로

가냘픈 생명을 키워왔다.”

 

-T. S 엘리엇,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잔인한 달 사월이다.

시간을 타고 사월에 머물러 있으려니

사월과 관련한 그림 한 점 앞에서 서성이게 된다.

 

아서 휴즈(Arthur Hughes)의 그림

'April Love'(1856년).

 

 

젊은이들의 반항과 도전 정신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해 왔었다.

19세기 중엽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19세기 중엽 영국에서는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라는

이름 아래, 기존의 전통과 자신들을 구별하는

젊은 예술가 그룹이 있었다.

 

그들은 르네상스 말기의 문학과 회화의 전통에

염증을 느끼고 중세 이탈리아의

라파엘 이전 시대로 회귀할 것을 주창했다.

즉, 그들은 미술을 위한 미술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자연을 이상화하고,

미를 탐구하는 방식으로서의

미술을 추구했던 것이다.

 

더불어 그들은

최초의 삽화가로 활동함으로써

근대 일러스트레이션의 시조가 되었다.

즉,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당대의 문학을 섭렵함으로써

그림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아서 휴즈(Arthur Hughes)는

라파엘 전파 화가들 중 하나였다.

그는 조지 맥도날드 (George Mcdonald)의 책에

환상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림으로써 유명해졌다.

이러한 아서 휴즈의 대표작이

바로 위의 그림인 'April Love'다.

그는 라파엘 전파 화가답게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월은 어떤 빛깔일까?

아서는 사월을

슬픈 바이올렛 빛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윳빛 살결의 아가씨는

너무나 아름다운

바이올렛 빛 드레스를 입고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서 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빛은

사월의 빛을 닮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무척 외진 곳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지 않은가?

대체 어떤 사연이 있기에

저렇게 그늘 진 곳에서

그늘진 낯빛을 하고 서있는 것일까?

 

 

 

 

 

 

 

 

가만히 그녀의 한 쪽 손,

그러니까 스카프를 잡고 있는 손 말고,

다른 쪽의 손을 따라가 보면

창 너머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또 다른 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은밀하고도 슬픈 사랑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녀는 라일락을 닮은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서도

얼굴에 깊은 눈물을

찍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은밀하고 슬픈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인지는

그림을 보는 사람의 상상력에 달려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그녀는

잔인한 사월의 사랑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울고 있다.

사랑하기에 눈물짓고 있다.

미세하게 떨리는 흐느낌이

붙잡은 손을 통해 전해진다.

그가 그녀의 손을 더욱 힘껏 쥔다.

 

그의 따스한 체온과

부드러운 힘이 느껴진다.

그녀는 짧은 그의 손길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서 집중한다.

기억은 오래 참음을 위한 연료가 되어

기어이 그녀의 사랑을 이루고야말 것이다!

(휴즈는 자기 아내인 ‘Tryphena Ford’를

모델 삼아 그림 속 여자를 그려냈다고 한다.)

 

 

 

요즘 케냐는 우기가 한창이다.

하루도 비를 거르는 법이 없는

케냐의 사월은 축축한 무채색이다.

 

나의 사월은 잔인하다.

왜냐하면 사월이 그 분의 말씀과

나의 조급함을 뒤섞고 있기 때문이다.

소망을 키워내기 위해

믿음을 장맛비로

아프게 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일 듯 말 듯 한

그림 속 따뜻한 손길은

마음에 화사한 바이올렛을 피워낸다.

따스하면서도 강한

나의 그 분의 손길이

황무지 같은 마음에

예쁜 빛을 호롱호롱 틔우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하얀 꽃씨를 날리는

사월의 바람이 내 앞에

노란 민들레는 하늘 바라보고

졸리운 강아지 눈을 감네.

 

아지랭이 피고 멀리 기차소리

골목길 꼬마들 노는 소리

연못 속에 잠긴 겨울 낙엽들

그 위로 사월이 맑게 비친다

 

빠알갛게 핀 꽃속에

새봄이 가득

겨우내 말랐던 가지 가지마다

푸른 사월이

 

새들이라도 노래를 해야지

하얀 나비 춤추는

푸른 사월에”

 

 

장맛비로 눅눅한 케냐의 사월.

오늘은 홍순관의 노래로 ‘사월’로

보송보송 말려봐야겠다.

 

 

 

#Apr. 15. 2013 글 by 이.상.예.

*) 위의 글은 2008년 4월에 쓴 글을

2013년 4월의 옷으로 갈아입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