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하는 화가 클레 #1.
미술과 음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았던 클레.
그러나 결국 그는
재능있던 바이올린을 접고
미술가로 존재를 드러냈다.
그래서 였을까?
그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심상을, 보이지 않는 음악을,
보이는 것으로 형상화시키는
화가로 명망을 얻게 되었다.
오선지..바이올린...활의 놀림...
모두 면보다는 선에 가까운 것들이기에
그의 그림은 색채보다는 선
즉 ,드로잉적 성격이 강하게 보인다.
암튼..
내가 그를 연주하는 화가라고 불러도..
클레는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림 속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금방이라도 하이 데시벨의 지저귐을 선뵐 것 같은
새들의 퍼덕거리는 비린내가
선을 타고 물씬 풍겨나고 있다.
눈물로 얼룩진 마스카라같이
매일 조금씩 그 경계들이 뭉개지는 날들이다.
이렇게 애매한 날들엔
명랑이 지나쳐 까랑까랑한
새들의 지저귐만한 음악도 없을 듯 싶다..
흐음~
나는 정말..
새들의 지저귐 만큼이나 오롯해지고 싶다.
#Aug. 1. 2007. 글 by 이.상.예.
=============(5년 후)==============
연주하는 화가 클레 #2
다시 클레의 그림 앞에 서 본다.
그의 그림은 변함이 없다.
허나, 나는 오년 전과 많이 달라져 있다.
얼굴의 기미는
얼룩덜룩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손가락의 주름도 제법 촘촘하다.
영혼이 스며들어 있는 피부는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가고,
덕분에 그것을 지탱하느라
무릎은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면서
아프다고 볼맨 소리를 낸다.
조금씩 뭉개지던 날들은
이제는 익숙한 것이 되어 버렸고,
오롯해지고 싶던 존재의 열정도
어느새 길들여져서는
한 두번씩 곤주를 부리긴 해도
머리를 콕 쥐어박으면 곧 조용해지곤 한다.
우리 집엔 자명종이 없다.
매일 아침 어김없이 귀를 간지럽히는
새들의 지저귐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직 잠과 뒤엉켜 있는 정신을 깨우는데도
그들의 지저귐만한 것이 없다.
수동태로 들려오는 지저귀는 소리에
능동태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나의 정신은 개운하게 세수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저귀는 기계'를 만들어
노래하게 하고픈 치열했던 갈망이
오 년 동안 조금씩
은혜로 주신 지저귐을
누리는 여유로 변해왔다.
이제는 연주하는 화가
클레의 '지저귀는 기계'와
작별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전도서 3:1)
#Nov. 15. 2012.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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