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식과 의미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시간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그의 책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의 의미를 시간의 지평 속에서 이해했습니다.
그의 깊은 생각을 한 마디로 축약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핵심은 시간을 통해서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북아프리카의 목회자요 신학자였던 어거스틴은
삶을 순환적인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의 영향력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선상에서 삶을 이해합니다.
모두 시간으로 신분도 대우도 결정됩니다. 이러한 철학적, 신학적, 사회적 영향에 따라서 아주 쉽게 시간이라는 지평을 사용합니다. 나는 어떠한 선교사로 지내온 것인가?" 하나님에 의해서 진행할 것인가?" 선교 사역을 위해 보내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라하면, 포함시킬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거침없이 뒤흔드시는 하나님의 선교 오리엔테이션을 경험하고 있고, 사역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선교에 집중하고 있느냐는 것에 설득할만한 답변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시간과 실용적 가치를 연결해서 의미를 찾습니다.
시간을 기준으로 정체성뿐 아니라 일의 댓가가 결정됩니다.
풀타임 자리를 가진 사람인지, 팟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그냥 몇 시간 일하는 사람인지...
나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규정할 때
"지난 7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 마지막까지 선교 사역의 내용과 방향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순전히
제 답은 그리 화려하거나 긍정적이거나 자랑할만한 것들을
선교사로서 탁월한 사역을 해왔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쉽게 보이고 소개할만한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자본주의적 시각에 따라 얼마나 많은 일을
그러나 이러한 제 상황이
이곳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비추어집니다.
"무엇을 그리 서두르냐?
(아프리카식 표현: pole pole)"
"때가 되면 다 진행될텐데... 걱정할 것이 무엇이냐?
(아프리카식 표현: Hakuna matata!)"
좀더 구체적으로 자리를 잡아,
더욱 의미있게 섬기기를 원하는 마음을 이들에게 표현할 때
이들이 제게 전해주는 답변들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답하는 이유는
이들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지배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몇 시에 모여서, 몇 시까지 무엇을 하느냐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많은 경우에 미리 시간을 예측해서 일을 진행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시간을 언급하고 말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모여서 그 일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하기에
시간에 대한 이해와 받아들이는 것이 전혀 다릅니다.
저는 암묵적으로
"선교 사역 가운데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열매를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과
"시간이 흘러도 쉽게 움직이지 않고 변화가 없는"
아프리카적 상황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정체성과 시간의 혼동을 경험하는 듯 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저의 선교적 정체성을 좀더 분명히 하기 위해서,
신앙의 기준이요 원리가 되는 성경적 가치를 적용하고자 합니다.
초대교회의 신앙고백들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세밀하게 반영하는 성경은
시간과 관련해서 매우 종말론적 연결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이고, 나의 삶의 방향과 의미는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모두 시간과 관련해서 종말론적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과정 가운데 있는 제 삶은 이제 과거에 살았던 것보다는
앞으로 주어질 분명한 미래에 의해서 이끌림받고자 합니다.
이곳에서의 하루 하루 삶과 일하는 과정은 모두
오늘의 삶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보장된 미래의 모습을 앞당겨 맛보는(foretaste)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수 없지만,
그렇다고 막연한 기대에 사로잡혀 '날로 날로 인생은 좋아질 것이다'라는
거짓된 소망에 삶을 내어 맡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행하시는 일들로
내가 누군인지가 결정된다는 고백을 삶으로 담아내는 것!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선교사로서의 새로운 인생 여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정체성 혼란이 저를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하늘의 소망과 하나님의 일하심에 기대고 의지하는
살아있는 신앙의 모습을 선명히 드러내고자 합니다.
고통과 픽밥 속에서도 다가 올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너무도 선명하게
삶으로 보여주었던 초대교회의 신앙 선배들 가운데
저도 한 발치 다가가기를 소원해봅니다.
2012년 8월
주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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