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볼프의 책, <하느님을 미워해도 될까요?>를 읽고.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보다 더 우리의 전 존재를 빨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 누군가를 미워할 때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문에 자물쇠가 채워집니다. 미움으로 인해 우리의 의식은 매우 좁아져 눈앞에 있는 것만,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보게 됩니다. -본서 중에서
상처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와 미움과 같은 어두운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이 책은 그에 대해 다정하게 답해준다. 역사상 가장 완전한 수준의 인간이었던 욥과 예수님은 상처 받았을 때, 하나님께 “왜?”라고 질문하면서 탄식했다. 부정적일지언정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토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철저히 믿었기 때문이다. 자기 앎의 한계와 능력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불변하는 사랑을 신뢰한 까닭에, 그들은 억울함과 분노와 고통을 하나님께 모조리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완전한 욥과 예수님이 그랬다면, 그들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한계와 나약함에 있어서 그들보다 몇 수 위인 내가 하나님께 하지 못할 표현은 없는 것이다. 나 자체를 포함하여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모조리 하나님의 것이다. 느껴지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그분께 드리는 것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분은 그것을 기꺼이 듣고 받으실 것이며, 나아가 그것을 재료로 아름다움을 창조하실 것이다. 나의 주님은 약함에 한없이 관대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요, 그 어떤 재료로도 필히 아름다움을 구현하시는 창조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은 메타 인지다. ‘이런 감정들에 사로잡히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이러한 분함, 화, 미움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 일들이 정말 일어난 것인가 아니면 내가 상상하고 있는 것인가?”라며 자신을 분석하는 것은 자기 비난과 함께 죄책감을 유발시킨다. 그리고 자기 판단을 통해 그것을 자기 정죄의 합리적 근거로 삼을 때, 침묵의 거미줄에 걸리게 된다. 미움과 분노 등 어두운 감정들과 관련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다. 침묵 속에서 그것들은 고스란히 저장되어 시도 때도 없이 뛰쳐나와 일상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과 관련한 일체의 메타 인지를 지양하면서, 부정적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 거칠지언정 솔직한 감정의 표현이야 말로 화해와 평안의 단초가 되어준다.
잘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바로 ‘우리 자신의 상처’입니다. 열과 성을 다해서 우리의 건강에 관심을 갖는 의사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그에게 우리의 상처를 보여주고 맡기는 것입니다. -본서 중에서
상처와 그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다. 그것이 전인격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마저 드릴 수 있다면, 주께 드리지 못할 것은 없는 까닭이다. 부정적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불평과 원망의 기도는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거친 표현 아래 숨어 있는 상처의 깊이를 보실 수 있다는 믿음, 그분의 놀라운 사랑은 심하게 상처를 입은 자녀들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받아들여주실 것이라는 믿음, 당신 아들의 죽음에 대하여 그러셨듯이 우리의 상처에 대하여도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 곧 그분은 우리의 상처와 같은 빈약한 빵으로도 귀한 선물을 집어내실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이 불평과 원망의 기도를 가능하게 해준다.
내가 누군가를 정말 싫어할 때, 미움에 깊이 사로잡혀 있을 때, 잠시 동안 나의 정체성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이 됩니다. … 미움을 포기한다는 것은 다시 화해와 사랑을 받아들이고 키워 나갈 만큼 자신이 자유롭다는 것을 인정하고, 복수를 위하여 상대방에게 행사하려던 힘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본서 중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나라는 성별, 세대, 지역, 성향, 경제적 수준 등 수많은 카테고리들이 조장하는 분열 속에서 미움과 분노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곳이다. 나약한 나는 사회가 지정해주는 부류에 귀속되어 일정량의 미움과 분노를 지급받는다. 미워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주입받는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카테고리들 위에 뛰어난 그리스도 안이 나의 본질적인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지급받은 미움과 분노를 제물 삼아 제단 위에 올려놓는다. 흠(꾸밈) 없이 순전한 표현으로 나의 솔직한 감정을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쏟아놓는다. 주께서 나의 미움과 분노를 가지고 화해와 사랑을 창조해 주시길 간구한다. 그러면 복수는 포기되고, 자유를 선물 받는다. 기도하지 못할 내용이 없고, 표현하지 못할 감정이 없으니 이 얼마나 자유롭고 복된 삶인가!
#Jun. 7. 2025.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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