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차가운 불신앙

창고지기들 2022. 7. 30. 11:07

 

 

 

 

차가운 불신앙

 

 

마음이 체한 것은 몇 개월 전이었다. 

불편함이 고통스러워지기 전에 

얼른 손가락부터 땄다. 

검은 피가 방울방울 토해져 나왔다. 

속이 한결 편안해지자, 다 나은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잠시 가라앉은 상태였을 뿐, 

체증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 후 또다시 체증이 도졌다. 

자동 반사적으로 바늘을 찾았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아무리 손을 따도 메슥거림과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손발은 갈수록 하얗게 질려서는 

식은땀까지 내기 시작했다.

기력이 빠르게 탕진되면서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고, 

해소할 수 없는 피로감으로 쩔쩔매기 시작했다. 

가벼운 마음의 체증이 중병이 되고 만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그것의 병명은 체념이었다. 

냉소(冷笑)를 수반하는 차가운 불신앙, 체념.


‘차가운 불신앙? 

그러면 뜨거운 불신앙도 있단 말인가?’ 

누군가 물어온다면, 대답은 ‘물론’이다. 

뜨거운 불신앙의 진수를 보고 싶다면 

출애굽기로 들어가 보라. 

열 재앙과 홍해의 기적을 몸소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원망하며 불평을 쏟아냈다. 

이글거리는 광야의 태양이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의 뜨거운 불신앙이 

여호와의 마음을 새까맣게 태웠음은 물론이다.


케냐 선교사 시절,

뜨거운 불신앙을 앓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때 나는 편들고 있던 하나님 나라가 

패배할 것만 같아서 두렵고 초조해 했었다. 

함께 참전한 전우들의 수준이 기막힌 까닭이었다. 

그런 오합지졸로 싸운다면 질 것이 뻔했다. 

뜨거운 불신앙을 앓기 시작하면서, 

나는 잦은 기침을 하듯 불평을 쏟아냈다. 

이윽고 뜨거운 불신앙으로 

목구멍이 꽉 막혀 숨 쉬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렀을 때, 

다행히도 그분이 왕진을 오셨고, 

손수 지은 탕약을 내게 먹이셨다. 

따뜻한 약이 혈관을 타고 온몸에 퍼지자, 

비로소 불신앙은 진정되었다.


“이 싸움은 오롯이 나의 싸움이다. 

너와 네 동료들은 그저 거들 뿐임을 명심해라. 

나는 내 전지전능과 포기를 모르는 의지로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다. 

그러니 너는 믿기만 해라.”

 


체증 같은 체념이 득세하자,

아이들이 딱해 보이기 시작했다. 

제 부모를 따라 

이리저리 방랑하듯 살아온 그들이다. 

특별히 아들아이는 현재 홈스쿨링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홀로 고군분투 하는 중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초등과 중등을 포함하여 

고등학교 까지 단 한 번도 졸업식을 경험하지 못할 예정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당연히 누리는 것을 박탈당한 것이다.


딸아이는 일종의 하이브리드다. 

겉모습은 한국인(보다는 동양인)이나, 

속사람은 미국인이다. 

3살에 한국을 떠났으니, 

그녀에게 고국은 사실상 미국이다. 

그런 그녀가 지난 5월, 미국의 한 대학을 졸업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음에도 

마음껏 기뻐할 수 없는 그녀였다. 

지난 시절 외국인이었던 나를 

지속적으로 힘들게 했던 비자 문제가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딸아이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오랫동안 미국에 살았으면서 영주권도 안 받고 뭐했어?” 

물론, 우리에게는 소명과 관련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체념에 걸려버린 나는 자조하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야(소명 따위가 뭐라고).”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라기 4:5) 

 

온갖 권세를 부리며 폭주하는 

교만하고 악한 자들의 세상 속에서 

차가운 불신앙에 걸려버린 나는 기침하듯 말했다. 

 

“우리는 소명을 따라 살아왔다지만, 

애들은 대체 뭐란 말입니까?” 

 

체념으로 불편해진 가슴을 치며 기도하고 있을 때, 

선지자 엘리야가 도착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말라기 4:1)


선지자 엘리야는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를 

지푸라기로 여기시는 분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를 것을 믿으라. 

그 날을 속히 불러오실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 날에 모든 악인은 모조리 소각될 것이며, 

의인의 발에 짓밟힐 것(말라기 4:3)임을 

끝내 믿으라.” 

 


선지자 엘리야의 간호 덕분에 

조금씩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분에 대한 신뢰가 차츰 회복되었고, 

믿음의 기운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이윽고 기력을 차린 나는 

‘자기 연민의 감옥’으로 가서 

갇혀있던 아이들을 풀어주었다. 

자유로워진 그들을 보면서 그분은 말씀하셨다. 

 

“이들은 내 사랑하는 자녀요, 

나의 기뻐하는 자들이라.” 

 

갑자기 그분이 자기 명예를 걸고 

아이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 

믿어지기 시작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라기 4:2)

 

 

 

 

 

#Jul. 30. 2022.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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