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빈 무덤 안에서

창고지기들 2022. 6. 4. 07:50

 

 

 

 

 

빈 무덤 안에서

 

 

매일 눕는 나의 침상은 무덤과 다르지 않다. 

나는 밤마다 무덤에 자리 펴고 시체처럼 눕는다. 

불을 끄고 이불을 고이 덮은 후, 

나는 미지(未知)의 장소로 나를 떠나보낸다. 

수면(!) 위에 띄운 작은 조각배를 타고 

나는 잠의 세계로 빠져든다. 

의식을 떠나 무의식으로 모험을 떠난다. 

다시 의식의 선착장으로 회항할 때까지 

떠돌아다니는 일에는 정처가 없다. 

지침 없이 밀려드는 꿈의 파도와 고비들. 

그것을 넘고 넘어 간신히 죽은 듯이 

누워있는 몸으로 되돌아오면 무덤 문이 열린다. 

아침이다.


은혜 없는 아침은 없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더듬거린다. 

휴대폰이 손에 잡힌다. 

전날 밤 맞춰놓은 알람이 울릴 새라 서둘러 끈다. 

한동안 꼼지락 거리며 사지(四肢)를 깨운다. 

천천히 일어나 침상을 정리하면 일과가 시작된다.

 


주도면밀한 자들이었다. 

안식일 전, 이미 여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꼼꼼히 확인해 두었다. 

안식 후 첫날 새벽, 여자들은 향품을 들고 예수께로 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의 시체를 보기위해 무덤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예수님의 시체는 없었다. 

무덤에 있어야할 시체가 보이지 않자 여자들은 당황했다. 

‘대체 예수님의 시체는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여자들의 번민이 빈 무덤을 횡행했다.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존재를 발견한 것은 잠깐 뒤였다. 

설핏 봐도 범상치 않은 것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은 즉시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 

온 몸이 떨렸다. 

어찌하여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그들이 물었다. 

그녀들이 찾는 시체는 살아나셨기 때문에 

더 이상 무덤에 계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갈릴리에 계실 때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해 보라고도 했다. 

여자들은 예수님의 무수한 말씀들 중, 

빈 무덤과 연결되는 말씀을 재빨리 검색해 보았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누가복음 24:7)


그제서야 여자들은 깨달았다. 

빈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였다. 

정신을 차린 여자들은 빈 무덤을 다시 둘러보았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신이 밀려들었다. 

이윽고 두려움으로 주저앉았던 여자들의 다리에 

소망의 힘이 들어갔다. 

이 소식을 빨리 전해야 한다는 사명이 불같이 일어났다. 


열한 사도와 다른 제자들은 

슬픔과 공포로 압살당하기 직전이었다. 

여자들은 그들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빈 무덤을 근거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했다. 

대체로 아무도 믿지 않았다. 

여자들의 말은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되었고, 

타박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달랐다. 

그는 무덤으로 달려갔다. 

여자들의 말대로 무덤은 비어있었다.

 

 


그 여자들 중에 내가 있다. 

나는 매일 아침 무덤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내가 만나리라 예상하는 예수님, 

내가 만나고 싶은 예수님, 

그리고 내가 상상하는 예수님을 찾는다. 

그러나 그 곳은 번번이 빈 무덤이다.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예수님은 언제나 없다. 


어쩌면 내가 찾는 예수님은 시체일지도 모른다. 

무덤에 얌전히 누워서 나를 기다리시는 분을 

나는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체가 아니다. 

말씀대로 기어이 다시 살아나신 까닭에 

더는 무덤에 누워있을 수 없다. 

결국 나는 영원히 

내가 원하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꾸준히 어리석은 여자다. 

그래서 매번 무덤으로 달려간다. 

예수님의 시체를 찾으며 헤맨다. 

애씀은 줄곧 허탕으로 마무리 된다. 

그럼에도 은혜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허탕 위에도 어김없이 쏟아지는 것이다. 

하기야 은혜의 주인은 긍휼의 왕이 아니신가! 

 

긍휼의 왕의 명령을 받은 천사들이 내게 나타나 말한다. 

“네가 찾는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다. 

이는 무덤에서는 절대로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뜻이다. 

자자, 이제부터는 이 무덤과 관련된 

그 분의 말씀을 기억에서 떠올려 보아라.”


나는 털썩 주저앉는다. 

곰곰이 생각한다.

무덤을 둘러보면서 그 분의 말씀들을 떠올려 본다. 

그러다 문득 말씀이 목에 걸린다. 

그리고 확신한다. 

주님은 정말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은 완벽한 타자시다. 

내 마음대로 가둘 수도, 제한할 수도, 

조종하고 통제할 수도 없는 분이시다. 

그 분은 그저 스스로 살아계신다. 

그 누구에게도 구속될 수 없는 완전한 자유 인격체. 

그런 분을 만나는 것은 불편한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신비한 일이다. 

세상은 신비를 꺼린다. 

그러나 신비를 꺼버린 인생은 빛나지 않는 조명이다. 

 

 

그녀들처럼 나 역시 

빈 무덤과 연결된 말씀을 전하러 달려간다. 

퍽 다행한 일은 나의 동료들은 대게 신실하다는 것이다. 

나의 증언을 들은 그들은 베드로처럼 무덤으로 달려간다. 

비어 있는 무덤을 직접 확인한 후, 놀랍게 여기곤 한다. 

나의 역할은 거기서 끝난다. 

나머지는 긍휼의 왕께서 하신다. 

그들 각자의 빈 무덤과 말씀을 연결시켜 

부활하신 그분을 기어이 만나게 될 테다. 

키리에 엘레이손!

 

 

#Jun. 4. 2022.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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