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락이랑 드보라랑
*
돌이켜 보면, 거의 학교 중심이었다.
남편이나 아이들 학교 주변에 집을 얻어 이사를 다녔고,
학교의 시간표를 따라 일상을 구성해왔다.
그렇게 대략 반 백 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직 학생이나 되는 듯 살아가는 중이다.
최근에 나는 11학년이 되었다.
아들 하진군이 11학년의 문을 열고 성큼 들어간 까닭이다.
아들을 따라나선 길에는 시작의 설렘보다는 까마득한 고단함이 지천이다.
아침 먹고 세수를 한 후,
의자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켜는 것으로 하진군의 수업은 시작된다.
매일 6 과목씩 정해진 분량의 학습을 하루 종일 한다.
이는 정규 학교에서 교우들과 함께
교사의 인도에 맞추어 진도를 따라가는 것에 비하면 어렵다.
학습의 주도권이 자신에 있기 때문에, 상당한 의지가 요구되는 것이다.
태만이 허용되기 시작하면 학업 진도가 뒤처지다
곧 따라잡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러므로 학기말 까지 꾸준히 학업을 밀고 나가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그토록 중요한 ‘의지’가 쉽게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랜 경험을 통해 근육처럼 축적되는 것이다.
의지를 요구하는 무거운 상황을 거듭 들어 올리면서 단련할 때
불끈불끈 자라는 것이 의지다.
특별히 큰 의지를 필요로 하는 홈스쿨링이라는 상황 속에서
의지박약을 개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시각을 전환하여 홈스쿨링을 피트니스의 장으로 여기고,
의지를 단련하여 발달시키면 될 일이다.
이 와중에 덩달아 11학년이 된 나는 동료를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수행한다.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아침과 저녁으로 청소부 아줌마가 되기도 하고,
삼시세끼 밥을 차려주는 영양사이자 조리사가 되기도 하며,
쉬는 시간에는 말동무 친구나 조언해주는 선배가 되어 준다.
나아가 이러저러한 질문들에 나름대로의 답을 주는 보조 교사가 되는가 하면,
때때로 카운슬러로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상상력과 반전 해석을 통해 동료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는 선지자가 되기도 한다.
*
여호와를 버림으로써 이스라엘은 고아가 되었다.
버림받은 여호와는 더 이상 이스라엘의 아비가 되어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져버릴 수 없었던 여호와는 그들에게 어미를 보냈다.
사사 드보라는 재판과 상담으로 이스라엘의 허기진 정의와 사랑을 채워주었다.
나아가 압제자 가나안 왕 야빈의 손아귀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선동했다.
물론, 물리적 전투는 드보라의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락의 임무였다.
그러나 그는 드보라 없는 전장에는 나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드보라는 바락을 아들처럼 달래 그와 함께 전쟁터에 나갔고,
거룩한 전쟁의 승리를 위해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참전을 요청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사사기 5:12)
전쟁이 시작되자 드보라와 바락은 각각 최선을 다해 전투에 참여했다.
드보라는 깨어 여호와께 기도(노래)했고,
바락은 이스라엘의 선봉장으로서 적군 시스라와 맞붙어 치열하게 싸웠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완전한 한 팀이 되어
막강한 가나안 왕과 싸웠고, 끝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
하진군의 11학년은 자신의 의지를 따라 8월 첫 주에 시작되었다.
희망차게 포문을 연 새 학년 새 학기였으나,
그 첫 주는 펑펑 울면서 잠드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만만할 리 없는 과목들의 냉혹함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던 모양이다.
자신의 무능력함에 슬픔과 분노를 느끼며 흐느끼는 아들을 뒤로 한 채,
나는 내 방에 들어와 불을 끄고 누웠다.
섣불리 위로를 건네거나, 사내자식이 운운하면서 혼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흠뻑 울도록 내버려 두고 싶었다.
그래야 다시 시작할 엄두를 내볼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어쨌든 11학년의 학업은 오롯이 하진군의 임무다.
6개의 과목을 상대로 학습하고,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치러 전리품 같은 성적을 차지하는 것은 온전히 그의 일이다.
그러나 그의 전장에는 나도 있다.
깨어서 그의 육체적 정서적 영적 상태를 살피고 지원해주는 동시에
주께 노래하듯 기도하는 내가 있다.
그렇게 우리는 완전한 한 팀이 되어
11학년이라는 전장에서 함께 싸우는 중이다.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너 바락이여,
실컷 울고 곤히 잠 들라.
나 드보라는 깨어서,
기필코 깨어서 기도하며 노래할 것이니!
자고 일어나거든 바락이여,
너의 과목들을
모조리 사로잡아 끌고 갈지어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싸워주실 것이니
마침내 우리는
승리의 노래를
함께 부르게 되리라.’
#Sep. 3. 2021.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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