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이웃 사랑의 첫 단추

창고지기들 2021. 6. 5. 12:21

 

 

 

 

이웃 사랑의 첫 단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골자로 하는 십계명 공표 이후,

구체적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 방법을 발표하는 출애굽기다.

먼저, 하나님 사랑은 예배와 관련된 것으로 신상 중심이 아니라 

흙과 돌을 재료로 만든 제단 중심이어야 함을 분명히 한다. 

다음으로, 이웃 사랑은 종에 관한 법을 필두로 

각종 민사와 형사 법률들의 소개로 이어진다. 

이 때 대단히 흥미로운 점은 

이웃 사랑이 종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 중 가장 연약하고 힘이 없으며, 

심지어 사람이 아니라 주인의 소유물(가축과 같은)로 취급되는

종을 이웃 사랑 대상의 일순위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36-37)


예수님에 따르면 

이웃이란 타자 중심적일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나를 중심으로 놓고 이웃을 정할 때, 

이웃은 결국 부패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웃(나를 위한 이웃)이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 

‘나는 누구의 이웃(이웃을 위한 나)인가?’가 옳다. 


강도 만난 자 혹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따르면, 

주인공인 강도 만난 자를 그대로 지나치지 않고 

자비를 베푼 지나가는 행인(사마리아인)이 바로 이웃이다. 

이상을 출애굽기 율법과 연관지어 볼 때, 주인은 종의 이웃이다. 

강도 만난 자와 같이 모든 것을 잃은 자, 

곧 자기 목숨과 자유와 인권을 모두 잃어버린 

종을 위한 이웃이 될 의무가 주인에게 있다. 

종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책임이 주인에게 있는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대대로 종을 한낱 소유물로 여겼던 고대 문화 속에서

종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은 절대로 쉬울 수 없다. 

이는 종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지 않으면, 

이웃 사랑의 실천이란 헛된 이상일 뿐이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이웃 사랑의 처음을 

종에 대한 전통적 편견 부수기로 시작하셨던 것이다.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출애굽기 21:1-2)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같이 대우할 것이요 

만일 상전이 다른 여자에게 장가 들지라도 

그 여자의 음식과 의복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말 것이요 

그가 이 세 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며, 

여자는 속전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할 것이니라

(출애굽기 21:9-11)


종에 대한 주인의 시각 바꾸기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비록 지금은 종살이를 하고 있는 종일지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유인이 된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내 집의 종을 단순히 종으로만 한정 짓지 않고, 

장차 자유인이 될 사람으로도 볼 줄 알아야 

종을 존중할 수 있게 되고, 

종을 위한 이웃도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종으로 팔린 자들을 위한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그를 딸처럼 볼 줄 알아야 하고,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부인으로 여길 줄도 알아야 하며,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누릴 권리를 가진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한 인격체로 대할 줄도 알아야 한다. 

즉, 사람을 고정된 하나의 지위나 역할로 한정 짓지 말고,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다양한 지위와 역할을 맡게 될 

존재로 바라볼 때, 비로소 이웃 사랑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말이다.

 


그녀를 만난 것은 시작과 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때였다. 

유학생활에 있어서 그녀는 출발점에, 나는 도착점에 있었다. 

내겐 풋풋한 새내기일 뿐인 그녀였다. 

그리하여 졸업을 앞둔 나는 

나의 것들을 아낌없이 그녀에게 나눠주었다. 

그녀를 말씀 묵상 모임으로 받아들여 묵상을 가르쳤고, 

여러 지인들을 소개시켜 주어 관계들을 확장시켜 주었으며,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기도와 함께 구체적인 도움을 주었으며, 

마지막 졸업 후 떠날 때는 애지중지하던 기타와 

미싱(소잉 머신) 등 여러 살림들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그 때의 나에게는 

그녀를 새내기 이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다.

 


5년 뒤, 다시 만난 그녀는 더 이상 새내기가 아니었다. 

아니, 새내기 일 수 없었다. 

그 어렵다는 *** 시험도 단 번에 통과하고, 

거칠고 난폭한 공항 픽업도 능숙하게 해내는 등 

선배를 능가하는 모습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어쩌면 나는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녀보다 훨씬 연약해진 나에게 그녀가 이웃이 되어주기를,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기를.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나는 언제나 베풀어주는 선배여야 했고, 

그리하여 그녀보다 궁핍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그녀를 위한 이웃이 되어야만 했다. 

이와 같은 경험은 

퍽 쓰디쓴 맛으로 지금도 혀끝에 걸려 있다.


그런 상상을 해본다. 

언젠가 이웃 사랑의 첫 단추, 

곧 상대를 단 하나의 지위와 역할로 고정시켜 대우하는

편견이 부서지는 은혜가 그녀에게 부어지기를. 

그래서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을 위한 이웃으로 나를 한정 짓지 않고, 

오히려 나를 위한 이웃이 되어주는 그녀를 만나게 되는. 

그래서 그녀와의 만남이 더 이상 주저되지 않게 되기를. 

키리에 엘레이손!

 




#Jun. 5. 2021.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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