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따뜻한 신학

창고지기들 2021. 6. 26. 11:58

 

 

 

 

따뜻한 신학


적들만큼 나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또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를 지독하게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할 수 있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연구해온 이들이 바로 적들이다. 

다윗의 적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다윗의 치명적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학적 평가’다. 

여호와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다윗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다윗을 정죄하는 것은 치명타가 될 터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적들의 판단은 

옳은 것인 동시에 틀린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시편 3:2)


팩트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역모로 

하루아침에 폐주(廢主)로 쫓겨났다는 것이다. 

적들은 이러한 사실에 

왜곡된 신학적 평가는 편집해 붙였다.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지 않으실 거야

(God will not deliver him).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기 때문이지.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 바로 그 증거지.” 

 

그들은 나름의 신학적 평가를 소리 높여(셀라) 지껄였다.


적들의 타격은 정확했다. 

그들의 말에 급소를 얻어맞은 다윗은 

비틀거리면서 몹시 번민하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적들이 성공했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비틀거리며 넘어질지언정 

아예 드러누울리 없는 이가 다윗이다. 

왜냐하면 적들이 이용하기 급급했던 하나님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다윗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적들이 이용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추상적이고도 일반적인 차가운 신학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구체적이고도 개별적인 따뜻한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구원이 

다윗에게는 더 이상 없을 거라는 신학적 평가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다윗은 자신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신학으로 

당당하게 소리 높여(셀라) 맞선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서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시편 3:3-4)


“아니다, 절대로 그럴 리 없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내가 부르짖을 때 

그분의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다!”


적들의 일반적·추상적인 신학은 

다윗의 인격적·구체적(경험적) 신학 앞에서

한낱 하룻강아지 일뿐이다. 

지속적인 인격적 관계를 통해 알아온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분을 경외하는 나를 버리실 리 없다, 

구원하지 않으실 리 없다는 신학이 

다윗에게 재기할 힘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오래 전 그 날, 

주의 영은 나에게 통곡을 선물해주셨다. 

주의 영으로 흠뻑 젖은 나는 

가슴 깊은 곳에 통곡을 내려 아픈 눈물을 연신 퍼 올렸다. 

하지만 그녀의 귀에 그것은 달리 들렸던 모양이다. 


“사모님 통곡소리를 들으면서, 

대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기에 

저토록 크게 통곡하는 걸까? 생각했어요.” 


정죄하는 그녀의 말 앞에서 

나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얼음!”일 수만은 없던 나였다. 

나의 하나님께서 속히 “땡!”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녀의 신학적 판단은 일면은 맞았고, 일면은 틀렸다. 

나의 통곡은 분명 죄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으나, 

그것은 수치를 퍼 올리는 두레가 아니라 

회복과 치유를 끌어올리는 두레인 까닭이다. 

통곡은 죄의 크기를 가늠하게 해주는 수단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고 즐거워하도록 주어진 선물이다. 

그래서 큰 은혜를 입은 자들이 

큰 소리로 통곡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절의 그녀는 인과관계에 속박된 

폐쇄된 신학에 갇혀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은혜를 저주로 둔갑시키는 

차가운 신학으로부터 달아나, 

이제는 따뜻한 신학의 품 안에서 

평안한 그녀이기를 기도해 본다. 

그분과의 친밀할 관계 속에서. 

키리에 엘레이손!

 

 




#Jun. 26. 2021. 사진& 글 by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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